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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1993년 작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영화입니다.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일본 나카모토 그룹의 초고층 신사옥이 들어서고, 준공에 맞춰 갈라 파티가 열립니다. 이 파티엔 LA 시장과 존 모튼 상원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파티 열기가 높아지는 동안 빈 중역 회의실에서 콜걸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강력계 형사 웹 스미스(배우 웨슬리 스나입스)가 현장에 달려가는데 한동안 사라졌던 베테랑 형사 존 코너(숀 코너리)와 함께 가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코너는 일본에서 일본 여인과 사귀면서 일본 비즈니스와 문화에 정통한 인물입니다. 코너는 일본 문화에 맞게 자신이 ‘센바이(선배)’ 역할을 할 테니 스미스에게 ‘코우하이(후배)’ 역을 하라며 일본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두 형사는 보안 카메라에 찍힌 범행 현장 녹화장면을 확인하려는데, 녹화 디스크는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영상을 통해 나카모토 그룹과 경쟁하는 다이마츠 그룹 회장의 아들 에디 사카무라가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코너는 이 영상에서 교묘하게 조작된 흔적을 찾아냅니다. 수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나카모토 그룹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업체 마이크로콘 인수를 추진하던 참이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통상 업무 담당자까지 고용해 밀어붙이지만 의회 승인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인수를 반대하던 모튼 상원의원은 돌연 찬성으로 선회합니다. 의회 승인을 받은 후 인수 문서에 최종 사인을 하려는 순간 두 형사가 회의장에 들어와 살인 사건의 충격적인 결론을 폭로합니다.
이 영화는 상영을 앞두고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논란이 일었을 만큼 일본 기업을 비판적으로 그립니다. 일본 기업인들이 미국 관료·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첨단 기술 기업이 일본에 넘어가는 식입니다.
이 같은 묘사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내자, 미국 상원은 1985년 일본의 불공정 무역을 비난하며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라는 결의안을 초당적 지지로 통과시킵니다. 미국 정부는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플라자 합의로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를 절상시켰습니다. 강한 엔화 시대를 맞은 일본은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 국가가 되었고, 1989년엔 미국의 상징이라 할 컬럼비아영화사와 록펠러센터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인들 사이 퍼진 ‘떠오르는 태양(일본)’에 대한 우려를 담은 것입니다. 조지 프리드먼의 1991년 저서 ‘다가오는 일본과의 전쟁’의 대중문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와 잃어버린 30년으로 인해 미·일 경제 전쟁 논의는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험은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경쟁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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