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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이슬람 반군 후티의 헬기가 지난달 20일 홍해에서 운항 중이던 자동차 운반선(PCTC) '갤럭시리더'호 위로 날고 있다. 후티는 이날 갤럭시리더호를 나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투박한 장화처럼 생긴 아라비아반도 남서쪽 끝, 홍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바브엘만데브(Bab el-Mandeb) 해협은 아랍어로 ‘눈물의 관문’이란 뜻이다. 수많은 항구가 연이어지는 폭 29km 해협엔 고대부터 해적이 판치고 물살도 거세 그만큼 목숨을 잃는 뱃사람이 많은 위험한 뱃길이었다.

이 눈물의 관문에 또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지하는 친(親)이란 성향 후티 반군이 지난해 말부터 홍해를 지나는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전체 상품 무역량의 12%를 차지하는 이 좁은 바다에 격랑이 일면서 세계 주요 해운사들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우회를 택했고, 중소 해운사들은 필사의 눈치 작전을 벌이며 홍해로 계속 배를 띄우는 모험을 감행 중이다. 노르웨이 해운사 프런트라인의 바스타드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NYT)에 “해운사는 대형 석유 회사나 무역 회사 등 고객사들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택시’에 불과하다”며 “한번 항해가 시작되면 선장이나 회사가 항로를 바꾸기 쉽지 않다”고 했다. 물류 불안이 이어지며 경제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EEKLY BIZ가 이 위험한 바다를 해부했다.

◇선박부터 해저 케이블까지

지난 2일 예멘 모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24km 떨어진 항구에서 세 차례 폭발음이 울렸다. 예멘 일대를 장악한 예멘 후티 반군이 민간 선박을 향해 발사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 영국 화물선 갤럭시리더호를 나포하고 선원 25명을 구금한 데 이어, 12월엔 유니티 익스플로러(바하마), 넘버나인(파나마), 스트린다(노르웨이) 등 민간 선박에도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최근엔 후티 반군이 선박에 이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집중 매설된 해저 광케이블을 타깃으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이 해협에 집중 매설된 해저 케이블이 절단되면 인터넷 장애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알자지라 등 외신은 다만 “예멘 외무부는 이러한 해저 통신 케이블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1월 12일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미국과 영국의 후티 반군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터 연합뉴스

그렇다면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긴장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흐야 사레아 후티 반군 대변인은 비디오 성명에서 “가자 지구가 필요한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받지 못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는 홍해의 모든 선박이 우리 군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해상 공격의 명분이란 얘기다. 해상 공격 배후엔 이란이 있다는 의심도 여전하다. 지난달 아드리엔 왓슨 미국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이 해상 공격에 깊이 연관돼 있다. 이란의 지원이 없다면 후티 반군은 선박을 추적하고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티 반군이 해상 공격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속뜻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후티 반군은 이슬람권은 물론 예멘 내에서도 소수 종파인 시아파이고, 시아파 중에서도 소수 분파인 자이드파다. 이에 반(反)이스라엘 여론을 등에 업고 존재감을 높이고 중동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는 해석이다.

그래픽=김의균

◇'시간의 마법’에 홍해 못 떠나는 해운사들

긴장이 높아지며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은 일찌감치 뱃길이 짧은 홍해와 수에즈운하 운항을 포기했다. 세계 2위 해운 업체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지난달 15일부터 홍해 항행을 중단했다가 2주 만에 재개하기도 했으나, 재개 직후인 지난달 31일 컨테이너선 ‘머스크 항저우호’가 후티 반군에게 공격당한 뒤 홍해 운항을 다시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중소 해운사 중엔 여전히 홍해 운항이란 모험을 강행하는 곳도 적잖다. 홍해 물길이 만드는 ‘시간의 마법’이란 유혹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홍해 항로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를 돌아가면 뱃길이 9000km 이상 길어지고, 이동 기간이 최소 7일가량 더 든다. 선박당 40만~70만달러에 이르는 수에즈운하 통행료를 아끼더라도, 늘어난 보험료·기름값 등 때문에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르웨이 해운사 프런트라인 측은 NYT에 “만약 그럴 능력만 있다면 우리도 홍해를 통한 운송은 피할 것”이라며 “그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고객사의 요청, 홍해 항로의 가성비 등 뱃머리를 틀기 어려운 이유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물가 상승 등 경제적 후폭풍 우려

홍해 운송 악재에 이미 해상 운임은 급등세다.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8일 1032.21에서 같은 달 22일 1254.99로 222.78포인트(21.6%) 올랐고, 이달 5일엔 1896.65로 12월 8일 대비 864.44포인트(83.7%) 올랐다. 해운사 OL-USA의 앨런 배이어 최고경영자(CEO)는 “해상 화물 운임의 갑작스러운 상승을 고려하면, 1분기에도 이러한 높은 운송 비용이 공급망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들은 지난 2021~2022년 공급망 대란 속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조만간 가격을 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이에 가까스로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았던 각국 정부도 물류발(發) 물가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홍해 항로 이용 차질로 세계 경제가 또 다른 위기의 폭풍에 직면했다”고 했다. 다만 홍해발 물류 리스크가 글로벌 물가를 직접적으로 자극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적잖다. 팬데믹 때와 달리 지금은 글로벌 생산망에 차질이 크지 않고, 화물 운임도 팬데믹 당시보단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홍해발 물류 리스크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항로 우회 등으로 운송 기간이 늘고 운임도 들썩이지만, 아직 수출입 물동량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한 달 동안 홍해를 항행한 우리나라 선박은 총 35척으로, 모두 무사히 통과했다. 해수부는 “지난달 21일 우리나라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위해 해운 업계에 우회 운항을 권고했다”면서 “계약상 운송 기간을 맞춰야 하는 등 부득이 홍해를 운항하는 선박은 24시간 추적·관찰하고 유사시 즉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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