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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0억유로를 투자하는 건 ‘돈 낭비(Waste of money)’입니다.”

대니얼 그로스(Daniel Gros) 유럽정책결정연구소 소장은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진정 유럽 전체를 위한 ‘산업 정책’을 펴려면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한 근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반도체 기술에서 유럽에 앞서 있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나 미국도 반도체 산업에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유럽 각국 정부가 이와 동일한 투자를 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결정연구소장/보코니대 제공

유럽정책결정연구소는 이탈리아 보코니대에 올해 생긴 연구소다. 그로스 소장과 보코니대 교수들은 유럽연합(EU) 본부와 의회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뤄지는 정책 결정에 보탬이 되고자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로스 소장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구매력(PPP) 기준 GDP로 보면 세계 전체 GDP에서 미국과 유럽의 비중이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R&D 투자로 ‘차세대 기술’ 개발하는 것이 진짜 산업 정책”

그로스 소장은 대학 교육과 R&D 투자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기술 개발을 통해서 배터리 제작 시 필요한 광물의 양을 줄인 ‘차세대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은 투자일 것”이라며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더욱 경제적인 산업 정책”이라고 했다.

유럽을 대표하는 ‘유럽 챔피언 기업’을 길러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EU 차원에서는 늘 이러한 ‘이상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하지만, 개별 회원국 정치인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이웃 나라 기업들보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로스 소장은 “유럽차원의 국부 펀드를 만들어서 산업 육성에 쓰자는 아이디어는 ‘정치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보조금 지급은 막고, 이 돈을 미래를 위해 쓰자는 것이 그로스 소장의 생각이다. “EU가 각국의 보조금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각국 정책결정자들이 유럽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방향이 맞는지 좀 더 고민해주길 기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럽이 강점 있는 핀테크 더 키우려면 규제 완화 필요”

유럽 사람들은 구글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일상을 기록한다. 그만큼 미국 IT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그로스 소장은 “언어와 법 규정의 차이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각국의 소비자 보호 규제”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IT 서비스가 등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혁신 기술 분야에서 유럽 기업들이 그나마 활약하는 분야가 핀테크다. 스웨덴의 클라르나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그로스 소장은 “핀테크 산업 성장을 위해서도 각국 정부가 소비자 규제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AI(인공지능)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규제 수준이 높다면 유럽 내에서 AI에 대한 투자·연구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스 소장은 유럽이 일종의 디지털 유로화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즉 CBDC의 도입이 일종의 ‘과잉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핀테크 기술이 발전해서 결제 등 금융거래가 충분히 편리하다”며 “대체 CBDC가 도입된다고 해서 소비자 입장에서 과연 달라질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미국·유럽 경제 격차 크지 않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유럽의 경제력이 미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로스 소장은 “달러화 강세 때문에 현재 달러 가치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유럽이 격차가 커 보인다”며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크지 않다”고 했다.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작년 미국의 GDP는 전 세계 GDP의 15.5% 수준이었는데 유럽(14.9%)보다 0.6%포인트 높을 뿐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중국(18.4%)의 GDP 비중이 가장 높다. 그로스 교수는 “GDP를 사람들의 실제 삶에 가까운 기준으로 보자면 구매력 기준으로 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제조업 부가가치 규모로 봐도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미국과 유럽의 경제 격차를 더 커 보이게 만드는 것은 주식 시장의 규모다. 미국은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 기본이 되는 유럽에 비해서 기업의 시가 총액이 크다. 그로스 소장은 “유럽이 통합 증권 시장을 만들 수 있다면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아이디어”라며 “자금 조달 방식의 차이 때문에 통합 유럽 주식 시장이 존재한다고 해도 미국 주식 시장의 규모와는 꽤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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