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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한 주택 앞에 '매매 완료(sold)' 표지판이 걸려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30대 미국 신혼부부 멜리사 맥니콜스와 케빈 해넌은 올여름 결혼식을 올리며 하객들에게 주택 구매 계약금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결혼 문화인 ‘희망 선물 목록’에 ‘홈 펀드(주택 자금)’ 항목을 집어넣은 것이다. 부부는 홈 펀드로 모은 5000달러를 보태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최근 32만달러짜리 집 한 채를 계약했다. 이들은 지역 매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 “희망 선물 목록에 주택 자금과 신혼여행 자금 딱 두 가지만 넣었다”고 했다.

집값이 껑충 뛴 미국에서 주택 구입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멜리사와 케빈 부부처럼 결혼 선물로 홈 펀드를 요청하는 문화가 등장한 게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침구류나 가전제품 같은 물품을 원했다면 지금은 내 집 마련용 현금을 달라며 손을 벌린다는 얘기다.

그래픽=김의균

결혼 정보 업체 ‘더낫’에 따르면 지난해 이 업체 결혼 서비스를 이용한 예비 부부 가운데 16%가 홈 펀드 항목을 넣었다. 지난 5월 부동산 사이트 리얼터닷컴이 최근 2년간 결혼한 755명에게 물었더니 80%가 “다시 희망 선물 목록을 만든다면 집 계약금이나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위한 현금 선물 항목을 넣을 것”이라고 답했다.

홈 펀드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폭등한 집값에 짓눌리는 고통이 반영된 새로운 트렌드와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주택의 일부를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하우스 해킹(house hacking)’에 관심을 쏟는다. 부동산 업체 질로우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집을 사서 이사한 6500여 명 가운데 39%가 ‘집 일부를 임대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문항에 동의한 비율을 나이대로 나눠보면 Z세대(51%)·밀레니얼세대(55%)가 X세대(36%)·베이비붐 세대(4%)보다 높았다.

소득이 부족한 젊은 세대가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사례가 늘면서 ‘네포-홈바이어(nepo-homebuyer)’란 용어도 등장했다. 네포티즘(족벌주의)과 집 구매자를 합해 만든 신조어로서, 현금을 상속·증여받아 집값에 보태는 젊은 층을 뜻한다. 부모 도움 없이 집을 사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태가 반영된 용어다.

실제로 부동산 업체 레드핀이 올해 30세 미만 주택 구입자 509명을 조사했다니 38%가 계약금을 내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증여·상속을 받았다고 답했다. 레드핀은 “많은 젊은이들이 주거 사다리의 첫 번째 단계에 오를 때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 집값과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자나 부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금수저’만 집을 사는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에 따르면 올해 주택 구매자의 평균 가계소득은 10만7000달러로 1년 전보다 2만달러 가까이 높아졌다.

질로우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카이라 올슨은 CNBC에 나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 가운데 ‘엄마아빠은행’을 이용하는 비율이 거의 40%에 달하는데 이는 특권적인 네트워크”라고 했고, 레드핀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대릴 페어웨더는 “가족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젊은 층에게는 주택 소유의 문이 닫히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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