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냉전으로 전 세계 군비 경쟁이 가열되면서 국내 방위산업이 최근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무장한 120만 북한군과 맞서야 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 오랜 기간 무기 관련 연구·개발에 투자해온 덕에 일부 무기류는 미국·프랑스 등 군사 대국 못지않은 높은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능에 비해 저렴한 가격, 신속한 납기도 한국산 무기가 해외에서 각광받는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항공기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 방산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군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수한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빠른 인도가 가능한 한국산 방산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위쪽부터) 올해 폴란드와 공급 계약을 맺은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한국항공우주(KAI)의 FA-50 경공격기. 현대로템의 K2 전차. /뉴스1·조선DB·현대로템

◇군비 경쟁 속 防産 강국으로 떠오른 韓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전 세계 무기 수출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2.2%로 세계 10위다. 1%도 안 되던 1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늘었지만 미국(41.4%), 프랑스(15.4%), 러시아(10.7%), 이탈리아(6.7%) 등에 비해서는 아직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성장세는 놀라운 수준이다. 과거 5년(2012~2016년)과 비교한 최근 5년(2017~2021년) 우리나라 무기 수출 증가율은 176.8%로 미국(14.2%), 프랑스(59.1%), 이탈리아(16.3%) 등을 압도한다. 같은 기간 독일과 중국, 러시아는 무기 수출이 오히려 20~30% 감소했다. 새로운 군사 대국으로 떠오르며 방산 붐이 일고 있는 인도(117.3%)보다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성장세는 최근 들어 더 폭발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기 수출 수주액은 역대 최고인 72억5000만달러(약 9조9200억원)에 달했다. 2010년대 내내 20억~30억달러 수준에 머물던 수출 규모가 단숨에 급증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와 각각 20조원, 4조3000억원 규모의 무기 공급 계약을 맺는 등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방산 시장의 ‘메기’로 부상하며 잇따라 대형 계약을 따내자 미국 등 기존 방산 강국들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한국이 최근 유럽에 대규모 무기 수출을 하면서 미국 방산 업체들이 실적 감소에 대한 우려 속에서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능·가격 등 장점 많은 韓 무기

한국이 방산 분야 신흥 강자로 떠오른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국내 방산 업체들의 기술력과 신속한 공급 능력을 첫손에 꼽는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북한의 전차·장사정포 위협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방산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에 투자한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세에 놀라움을 표하며 최근 “한국이 조용히 세계 최상위권 무기 공급국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내용의 특집 기사를 내보낸 포브스도 한화디펜스,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 업체들의 최대 강점으로 경제성, 기술력과 함께 신속한 인도가 가능한 점을 꼽았다.

호환성도 한국산 무기의 강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다양한 무기류를 상호 연동해 써야 하므로 이미 미국산 무기를 다수 보유한 국가들은 호환성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데, 한국은 오랜 한미 군사 동맹 덕분에 어느 나라보다 미국산 무기와 호환성이 높은 편이다.

국내 방산 업체들이 무기 제조 현지화와 기술 이전에 적극적인 것도 무기 수입국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인이다. 판매 후에도 수준 높은 사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미국처럼 까다로운 구매 조건을 걸지도 않는 것도 강점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와 단일 유도 무기 수출로는 사상 최대인 2조6000억원 규모의 탄도탄 요격미사일 체계 ‘천궁-Ⅱ’ 수출 계약에 성공한 것도 구매 후 활용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글로벌 국방 지출 추이

◇고부가 경쟁력은 아직 미미

신냉전 흐름 속에서 각국의 군비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방위산업은 당분간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매년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온 중국과 인도, 중동 국가들에 더해 유럽 국가들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제히 국방비 증액을 선언하면서 내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액은 처음으로 2조달러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도 ‘방산 골드러시’ 시대를 발판 삼아 우리나라를 미국·프랑스·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 방산 국가로 키우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방위산업은 기계·전자·항공·통신 등 주변 산업 파급 효과가 큰 데다 ‘창정비(廠整備)’라는 장기 유지 보수 수입까지 수반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다. 시장에서는 국내 5대 방산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올해 8994억원에서 내년과 2024년 각각 1조3020억원, 1조6581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와 비교해 각각 45%, 84% 증가한 규모다.

하지만 한국이 전 세계 방산 시장에서 주류로 발돋움하려면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 품목이 아직 함정, 화포 등 부가가치가 비교적 낮은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 등 글로벌 방산 시장을 주름잡는 강국들이 하나같이 대당 가격이 높은 항공기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난다.

이 나라들은 전체 방산 수출에서 항공기 비율이 30~60%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함정과 화포가 각각 68%, 19%를 차지하고 항공기 수출 비율은 12%에 그친다. 항공기 기술력이 아직 무기류에 비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방기술품질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방산 물자 국산화율은 통신 전자(88.3%), 화력(77.8%), 함정(76.6%) 등은 높지만 항공(52.8%)은 낮은 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호건 연구원은 “방위산업은 기획부터 개발·생산·운영까지 20~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초기 단계부터 국제 공동 개발을 검토해 첨단 기술 개발 비용을 줄이고, 글로벌 시장 선점 효과를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 같은 무기 수출 강국은 무기를 판매하면서 외교적·군사적 지원까지 제공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럴 만한 국력이 부족한 것도 수주전에서 약점으로 작용한다. 시몬 베제만 SIPRI 수석연구원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한국산 무기를 사면 한국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미국산 무기를 사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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