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에 ‘욜로(YOLO)’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뜻의 영어 문장 ‘You Only Live Once’의 글자를 딴 단어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른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1~2년씩 세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 경험을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올리고 책으로 펴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욜로’의 물결은 되레 더 거세졌다. 원격 근무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은 힘들게 일했던 직장에서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행복을 찾겠다며 직장을 떠난 사람이 미국에서만 454만명(올해 3월 기준)에 이르렀다. 명품이나 집을 사겠다는 행렬도 이어졌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하고 금리가 오르자 ‘욜로’가 만들어 낸 경제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자동차나 명품 구매를 멈추고 부모 집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늘었고, 부동산이나 주식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대신 경제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를 두고 “욜로 경제가 빠르게 ‘관망(wait and see)’ 경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코로나 자금이 밀어 올린 욜로

코로나19 이후에도 욜로 열풍이 이어진 것은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과 이른바 MZ세대의 소비 성향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4조달러(약 5740조원)를 투입하는 등 재정과 양적 완화로 9조달러 넘는 돈을 풀었다. 시중에 돈이 넘치자 삶의 질을 높이려 취미 생활이나 자기 계발 등에 나선 사람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MZ세대가 이 같은 움직임을 이끌었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시장으로 몰려 단기간에 수익률이 수천 퍼센트가 넘는 이른바 ‘밈(meme) 주식’을 탄생시켰고, 가상 화폐와 NFT(대체 불가능 토큰) 같은 신종 투자 자산 가격도 밀어 올렸다. 덕분에 비트코인은 2019년 초 3000달러(약 430만원)에서 작년 8월에는 6만8790달러(약 9870만원)로 22배 뛰었다. 재미를 본 MZ세대는 명품 시장으로 몰려갔다. 미국 결제 서비스 기업 클라나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밀레니얼 세대가 사치품을 구입한 비율은 63%로 X세대(45%)와 베이비붐 세대(25%)를 능가했다.

주머니 형편이 넉넉해진 MZ세대는 보금자리를 꾸미기 위해 내 집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미부동산협회에 따르면, 미국 주택 구매자 가운데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37%에서 올해 43%로 늘었다. 자연히 집값도 꿈틀댔다. 미국의 주택 가격 상황을 보여주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의 전미주택가격지수는 2018년 1월 196에서 2020년 1월 212까지 완만하게 올랐으나, MZ세대가 본격적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선 지난 2년간 90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약 50% 급등했다.

◇소비는 줄이고, 퇴직은 미루고

그러나 올 들어 물가와 금리가 급등하자 욜로를 꿈꿨던 사람들도 지갑을 닫고 관망으로 전환 중이다. 미국 부동산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리얼 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7~9월 아파트 입주 수요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는데, 리얼 페이지는 “주거비를 줄이려고 부모 집이나 공유 주택으로 옮기겠다는 사람이 증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신차 구매 수요도 급감해 올해 2분기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작년보다 20%(82만여 대) 줄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머리 깎기, 뒷마당 수영장 건설, 낡고 물이 새는 지붕 교체 등을 미루기 시작한 미국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열풍처럼 번졌던 퇴직 행렬도 주춤해졌다. 올해 3월만 해도 454만명에 이르렀던 자발적 퇴직자는 지난 8월 415만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도 한 달 동안 110만건 줄어들었다. 2020년 4월 이후 2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욜로를 즐기던 부자들도 몸조심에 들어갔다. 미국 CNBC 조사에서 연 소득 1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층 가운데 68%는 오른 물가가 걱정돼 금전적인 결정을 내릴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답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상위 0.1%의 가계 자산은 2020년 12조1300억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18조4600억달러로 급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2000억달러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에는 1조2100억달러가 더 증발했다. WP는 “주식 가치가 3조달러나 폭락했기 때문”이라며 “저소득 가정들이 물가 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지만, 고소득 가정 역시 주식과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소비를 줄이고 관망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저축·보험은 필수” 움츠리는 한국 욜로족

욜로 현상이 식어가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동안 욜로 현상을 주도한 1인 가구에서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움직임이 확연하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전국 25~59세 남녀 1인 가구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 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44.1%로 2년 전 같은 조사(34.3%)보다 9.8%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소비는 2년 전 조사(57.6%)보다 13.4%포인트 떨어진 44.2%를 기록했다. 대출을 갚는다는 비율도 8.2%에서 11.2%로 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영향으로 각종 보험에 든 사람의 비율은 2년 전 75.3%에서 올해 들어서는 88.7%로 늘었고, ‘보험 가입은 필수’라는 인식도 51.6%에서 60.3%로 늘었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은 “젊은 1인 가구들이 이전 세대보다 저축보다 소비의 효율을 중시했지만, 최근 경제 상황이 바뀌자 미래에 대비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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