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김의균

지난 7월 프랑스 경찰과 14개월간의 합동작전 끝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말라가 등지에서 마약 밀매범 8명을 체포한 스페인 경찰은 현장을 급습한 뒤 경악했다. 용의자들의 은신처에서 제작 중이던 소형 무인잠수정 석 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용의자들은 한 대당 200㎏까지 실을 수 있는 무인잠수정을 통해 모로코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마약을 운반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에서는 대량의 마약과 현금, 그리고 여섯 대의 대형 드론도 발견됐다. 스페인 경찰은 “마약 운반용 무인잠수정을 적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1억2300만유로(약 1700억원)어치 코카인 3000㎏을 잠수함에 실어 브라질에서 스페인으로 밀수하려던 일당 7명이 붙잡혔다.

그러잖아도 불황을 모르고 성장해온 마약 산업이 가상화폐, 다크웹, 드론 같은 신기술을 등에 업고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호주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이제 마약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바다를 가로질러 운반될 수 있다”며 “원격조종을 통해 마약을 실어나르는 드론과 잠수함, 무인 선박은 국제 마약 밀매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일부 국가의 마약 합법화 정책과 전쟁까지 더해져 마약 확산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다.

지난 7월 스페인 경찰이 적발한 무인 잠수정. 한 마약 조직은 최대 200㎏ 상당의 마약을 싣고, 원격 조종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잠수정을 개조했다(위 사진). 지난해 스페인 경찰이 스페인 남부 말라가의 한 창고에서 적발한 드론(아래 사진). 이 드론은 한 마약 조직이 운영해 왔는데, 최대 150㎏의 마약을 싣고 시속 120㎞로 비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BBC캡처·스페인 경찰

◇전 세계 성인 6%가 마약에 손대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 거래 특성상 전 세계 마약 산업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인 GFI는 2017년 보고서에서 2014년 기준 전 세계 마약 산업 규모가 4260억~652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448조~68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마약 산업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0.8%에 이를 것이라는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데이비드 퍼듀 미 공화당 의원은 2019년 청문회에서 “멕시코 카르텔이 미국에 마약을 밀수해 버는 돈만 5000억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애플 매출액이 3783억달러였다.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르지만, 마약 산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로 입증된다. UNODC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15~64세 인구 가운데 약 2억8400만명이 마약류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8명 가운데 한 명꼴로 마약에 손을 댄 셈이다. 10년 전인 2011년(2억2600만명)과 비교하면 5800만명 늘었다. 마약으로 인한 사망자도 2019년 49만4000명에 달해 10년 전보다 17.5% 증가했다. 대표적인 마약인 필로폰은 2006~2010년에는 84국에서 밀매가 이뤄졌는데, 10년 뒤인 2016~2020년에는 117국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가다 웰리 UNODC 사무국장은 “불법적으로 제조되고, 압수되는 마약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가 마약 단속에 불을 켜는데도 마약 산업이 번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수익성 때문이다. 런던정경대 연구에 따르면, 원산지인 콜롬비아에서 그램(g)당 2.44달러에 거래된 순도 87~95%짜리 코카인은 미국으로 밀수된 후 희석 과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0.25g당 175달러에 팔린다. 이익률이 무려 6427%다. 아프가니스탄 헤로인도 밀수에 성공해 미국에서 팔면 37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전직 마약수사 검사는 “원산지가 아니라 어디서든 대량으로 마약을 구해 유통하기만 해도 최소 세 배 이익은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신기술 등에 업은 마약 산업

이런 가운데 드론이나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은 마약 밀수업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가령 지난해 스페인 경찰은 모로코 일대에서 마약 조직원의 거주지를 급습했는데, 이곳에서 대마초로 만든 마약인 ‘해시시’ 12㎏이 적재된 드론 한 대를 발견했다. 드론은 무거운 짐을 싣고 7시간 이상 비행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널 수 있도록 개조된 상태였다. 유럽마약감시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컨테이너선을 통한 대규모 밀수 외에 새로운 밀수 경로나 은닉 방법, 제조 공정이 개발되는 등 세계화로 인해 마약 밀수와 생산에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가상화폐와 다크웹(특수 경로로만 접근 가능한 온라인 공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SNS 등은 마약 판매와 유통에 핵심 역할을 하며 일반 대중도 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추적이 어렵다 보니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다크웹·가상화폐를 이용하다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2018년 85명에서 2021년 832명이 돼 3년 만에 10배로 급증했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다크웹과 가상화폐를 이용한 마약 거래는 대략 이렇게 이뤄진다. 먼저 다크웹 운영자가 마약 판매자로부터 일정액의 보증금을 받고 마약 판매 광고 글을 올린다. 구글 검색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다크웹에 접속한 구매자가 텔레그램 같은 익명 SNS로 연락해 거래가 성사되면 다크웹 운영자들은 수수료를 떼고 나머지 금액을 마약 판매자에게 준다. 물건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손쉽게 전달된다.

거래는 대부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통해 이뤄진다. 마약 판매자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개설한 지갑에 구매자가 가상화폐를 입금하는 방식이다. 거래 과정에서 신분이 드러나거나 가상화폐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중간에 수수료를 받고 결제를 대행해주는 업자도 생겼다. 그래도 가상화폐 거래를 꺼리는 구매자들에게는 판매자가 불법으로 취득한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고 무통장 입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법무법인 오현의 양제민 변호사는 “온라인에 조금만 익숙하면 누구나 쉽게 마약을 찾고, 단순히 돈만 보내면 마약을 받을 수 있다”며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권하다 보니 마약이 음성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법화가 마약 확산 부추겨

일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마약 합법화가 불법 마약 확산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마초의 경우 현재 전 세계 50여 나라가 유통에 법적 제한을 두지 않는다. 2013년 우루과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했고, 2018년 캐나다는 G7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합법화했다. 현재 미국도 50주 중 37주와 워싱턴DC가 의료용 대마초 사용을 합법화했다. 18주와 워싱턴DC는 비의료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대마초 사용이 불법이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 행정부는 이 또한 합법화를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대마초를 갖고 있다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자 6500여 명을 사면하기도 했다. 유엔도 지난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마초를 마약에서 제외했다.

여러 나라가 대마초를 합법화한 것은 마약류 중에서는 독성과 의존도가 비교적 낮고, 이미 대마초 사용이 만연해 불법을 고수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 등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대마 합법화가 과용과 중독, 우울증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는 우려도 잇따른다. UNODC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 세계 대마초 사용이 증가했는데 특히 대마초를 합법화한 나라에서 대마초 사용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대마초가 마약에 대한 경계심을 낮춰 중독성이 더 강한 다른 마약으로 이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른바 ‘관문 이론’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대마초를 접한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코카인에 손댈 가능성이 10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을 최악의 마약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합법적인 마약성 물질인 펜타닐이다. 펜타닐은 다국적 제약사 얀센이 개발한 마약성 진통제로 환각성과 중독성, 살상력이 매우 높지만 강력한 진통 작용을 인정받아 말기 암환자 등을 위한 처방약으로 허가받았다. 그러나 오·남용이 잇따른 데다 간단한 제조법 덕분에 마약 밀매조직들까지 생산과 유통에 손을 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말았다. 뉴욕에서는 의사 1명이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를 2013~2017년 5년간 220만회 처방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펜타닐은 대부분 중국에서 원료를 생산한 뒤 멕시코에서 완제품을 제조해 미국으로 흘러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20년부터 2년간 18~45세 인구 약 7만9000명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교통사고나 자살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다.

◇분쟁이 마약을 키운다

전쟁도 마약 확산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아편의 86%를 생산했다. 그 배경에는 2001년부터 20년간 벌였던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이 있다. 탈레반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아편을 몰래 팔아 충당했다. 아편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10% 경작세를 부과했고, 가공과 밀매를 해서도 이익을 얻었다. 주민들 또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양귀비(아편의 원료)를 재배하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기 위해 마약에 빠져들다 보니 더욱 확산됐다. 이 때문에 아프간 내 아편 관련 일자리는 12만개에 달하고, 아편 사업의 전체 규모는 아프가니스탄 GDP의 약 30%인 6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간이 아편 사업으로 거둬들이는 수익만 18억~27억달러로 유엔은 추산한다. UNODC는 연례 보고서를 통해 “중동과 동남아시아의 이전 경험에 비춰보면, 분쟁 지역은 언제 어디서나 마약을 제조하는 일종의 ‘자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와 격렬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동안 대마초를 재배해 온 세계 최대 대마초 생산국 중 하나이고, 암페타민이나 메스암페타민 같은 합성 마약 제조 시설도 적지 않다. 유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적발돼 폐쇄된 마약 제조 시설은 2019년 17곳, 2020년 79곳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6월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하기로 결정했다. 빅토르 리아시코 보건부 장관은 “전쟁으로 인한 암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격리 치료 목적 때문”이라며 “전쟁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UNODC는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인 2018~2020년에도 마약 주사 경험이 있는 성인이 1.7%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전쟁이 우크라이나 안팎의 마약 사용과 밀매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약 청정국은 옛말

독버섯처럼 번지는 마약 산업으로부터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않다. 과거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 우리나라가 이제는 ‘마약 신흥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대검찰청이 내놓은 백서에 따르면 2020년에 적발된 마약사범은 1만805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보통 인구 10만명당 적발된 마약류 범죄자 수가 20명 이하이면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는데, 작년에는 31.2명까지 뛰었다. 특히 청소년 마약 사범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몰래 숨어서 은밀하게 마약을 사고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숨지 않고 대놓고 사고팔겠다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술까지 등에 업은 마약 밀수·유통 조직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데 반해 단속 기술이나 방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지난달 24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입국한 A씨는 입국 다음 날 돌연 사망했다. 그의 위장에서는 마약 의심 물질과 함께 이를 포장하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비닐이 발견됐다. A씨는 입국하면서 몸속에 마약 봉지를 넣어서 들어왔는데, 몸속에서 터지면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마약을 몸속에 숨겨 운반하는 사람을 ‘보디 패커(body packer)’라고 하는데, 마약 범죄가 성행하는 중남미에서 미국·유럽 등지로 운반할 때 주로 등장한다. A씨가 보디 패커임이 최종 확인되면, 한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보디 패커로 활동한 첫 사례가 된다.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외국에서 마약을 10건 들여오면 인천공항에서 적발되는 것은 한 건 정도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신고가 있어야 적발이 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 다크웹(dark web)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비밀 웹사이트.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속자나 서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마약이나 성 관련 범죄, 자금 세탁 등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3년 미국 경찰이 온라인 마약 거래 웹사이트 ‘실크로드’를 적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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