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조각가 주세페 프랑키가 1797년 제작한 나폴레옹 흉상. 나폴레옹이 28세 나이로 이탈리아 원정에 성공한 뒤 제작됐다. /AFP연합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뒤 실권을 장악했지만 차마 왕권을 찬탈하는 일은 오래 망설였습니다. 그사이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는 정도전, 조준을 비롯한 이성계 세력 제거를 시도합니다. 가문의 생사가 경각에 놓이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나섭니다. 그는 와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가신들을 불러모은 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정몽주 척살을 지시합니다. 이때 이방원의 나이는 24세였습니다.

만약 이방원의 나이가 48세였어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좌고우면 않고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는 결단 혹은 객기가 그때쯤엔 거의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위대한 혁명가와 예술가가 대부분 서른 살 이전에 역사에 족적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스물둘에 페르시아 정복 전쟁에 나섰고, 칭기즈칸은 스물일곱에 부족의 칸으로 추대된 후 몽골 통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한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기업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창업한 것은 각각 스무 살과 스물한 살 되던 해였습니다. 쌀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정주영이 처음 사장이 된 것은 스물세 살 때 일입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고 백세 시대가 되었다 해도, 사람이 야망을 품고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시기는 일생 중 한때입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희끗해지고, 노안이 오고, 돌봐야 할 가족이 늘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필즈상 수상 자격을 40세 이하로 제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고 고령화될수록 젊은 나이에 뜻을 펼칠 기회는 좁아지고 늦춰집니다. 연공서열과 나이를 유별나게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3공화국 때 김정렴은 마흔둘에 재무장관이 됐지만, 지금 기획재정부에는 나이 마흔에도 사무관을 못 벗어난 행정고시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좀 오래된 기업에서는 40대가 막내 노릇을 하는 팀이나 부서도 흔합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20, 30대 사이에는 자연히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합니다. 그 결과가 요즘 관가에서 잇따르는 이직 행렬이나 B10면에서 다룬 콰이어트 퀴팅(조용한 퇴사)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죠. 이런 무기력증을 ‘어린애들’의 배부른 투정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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