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김모(34)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집에서 일한다. 특별히 외부인을 만날 일이 없으면 카페나 집에 있는 책상에 노트북을 펼쳐 놓는다. 그런데 그는 요즘 회사 일이 예전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김씨는 “메신저에 잠시 보이지 않거나, 답을 조금이라고 늦게 하면 상사들이 눈치를 주는 게 보통이 아니다. 잠시 화장실 다녀왔는데도 믿질 않는다”며 “몸은 편해졌어도 스트레스는 더 심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영석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나 유연 근무가 확산되며 직장인들의 객관적 근무 여건은 한결 나아졌다.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휴가를 늘리고, 아예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그런데 여론조사 업체 갤럽이 최근 전 세계 96국 기업 11만2312곳에서 일하는 직장인 270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들의 만족도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업무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은 60%를 넘었고, 19%는 비참하다고 했다. 갤럽은 “내 직장이 별로라는 말은 늘 하는 얘기지만, 비참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경기 침체 걱정이 높아지는데도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파악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고 전했다. 집에서 일할 수도 있고, 일도 예전보다 덜 하는데 왜 직장인의 불만은 커진 걸까.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 역대 최대

갤럽이 발표한 ‘2022년 글로벌 고용 시장 현황 보고서’를 보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직장인 비율은 2009년만 해도 31%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2020년(43%)에 처음으로 40%를 넘어섰고, 작년에는 1%포인트 더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지역별로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아시아 비율(55%)이 가장 높았다. 이어 미국·캐나다(50%), 라틴아메리카(50%) 순이었고, 구소련 국가에서는 19%만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해 가장 낮았다.

직장 때문에 ‘걱정된다’는 응답도 2009년 30%에서 지난해는 40%로 10년 만에 10%포인트 상승했다. 이 밖에 ‘화가 난다’는 답변은 19%(2009년)에서 25%(2020년)로, ‘슬프다’는 답변은 16%(2009년)에서 24%(2020년)로 늘었다. 반대로 직장에서 업무에 ‘몰입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9년 22%에서 지난해 21%로 소폭 하락했다.

미국 최대 생명보험 회사 메트라이프가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이 업체가 지난해 미국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66%로 2002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낮았다. 1년이 지나도 현 직장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답한 비율도 2018년 80%에서 70%로 10%포인트 줄었다. 토드 카츠 메트라이프 부사장은 “미국인들이 직장에서 중대한 변곡점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 “못 참겠다, 엉터리 보스”

갤럽은 직장인들의 만족감이 떨어진 근본적 이유로 ‘직장 상사’를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로 ‘직장 내의 부당한 처우’를 들었다. 이 외에도 ‘상사의 업무 처리 시한 압박’ ‘상사의 지원 부족’ ‘상사의 불분명한 지시’ ‘지나친 업무량’ 등을 꼽았다. 모두 ‘직장 상사’와 연관돼 있다는 게 갤럽의 설명이다. 에너지 관련 대기업 7년 차 직장인 최모(36)씨는 “근무 여건도 나쁘지 않고, 급여 수준에도 불만이 없다”며 “유일한 스트레스는 공감 능력이 없고 제멋대로인 상사와 의사소통할 때 느낀다. 비슷한 또래 동료 가운데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갤럽은 “나쁜 상사는 부하를 무시하고, 결코 직장에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며 “엉터리 같은 직장 상사가 있으면, 대부분 자신의 직업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된다”고 풀이했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필패(必敗) 신드롬(The Set-up-to-fail Syndrome)’과 무관치 않다. 필패 신드롬은 아무리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도 상사에게 일을 잘 못 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실제로 무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조직 인사 컨설팅 회사 콘페리의 이종해 전무는 “‘나는 일을 멀쩡하게 했는데 엉터리 같은 직장 상사 때문에 내가 무능하다고 낙인이 찍힌다’는 생각이 들면 직장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개성 강한 MZ세대 직장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넉넉한 일자리 사정이 역설적으로 직장에 대한 불만족을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물가가 오르고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오지만, 각종 고용 상황은 사상 최고라고 할 정도로 호황이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3.5%로 사실상 완전 고용 수준이다. 유로존도 6월 실업률이 6.6%로 단일 통화를 정식으로 도입하기 직전인 1998년 이후 가장 낮다. 한국(최근 실업률 2.9%), 영국(3.8%), 일본(2.6%)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로 인해 직장을 옮기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미국인 6174명을 대상으로 지난 6~7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22%)꼴로 6개월 내에 직장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취업 정보 사이트 캐치가 직장인 1467명을 상대로 이직 의사가 있는지 물었더니 76%가 “이직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적극적으로 이직을 준비한다”는 응답자도 46%나 됐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은 “전체적으로 일자리 상황이 좋으면 내가 다니는 직장보다 더 좋은 직장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상대적으로 자기가 현재 다니는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을 옮길 경우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여건도 현 직장에 대한 불만을 키운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미국 정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을 옮긴 미국 근로자의 약 60%가 수입이 전년보다 늘었다. 이는 직장을 옮기지 않은 근로자 가운데 연봉이 오른 비율(47%)보다 높다. 40대 대기업 부장급 김모씨는 “실제 일할 때는 내 직장에 큰 불만이 없어도, 다른 곳으로 가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있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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