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경기 침체에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올 들어 S&P500지수는 20% 떨어졌고, 6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2% 감소해 예상치에 못 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한 달 만에 0.6%포인트 내려 2.3%로 예측했다. 물가 상승률이 9%를 뚫으면서 소비 심리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월가 대형 은행인 웰스파고는 이미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일자리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미국 내 비농업 부문 사업체 일자리는 지난달에도 전월 대비 37만2000개 늘어 월가 예상치보다 10만개 정도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상황을 ‘고용이 풍부한 경기 후퇴(jobful downturn)’라고 표현했다. 경기와 고용이 따로 노는 이 기이한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난달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한 레스토랑 바깥에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간판이 설치돼 있다. 미국 곳곳에서 경기 침체 신호가 짙어지고 있지만, 고용시장만은 구직자 우위의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고용 있는 침체, 한국전쟁 이후 처음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4월 14.7%까지 치솟았던 미국 실업률은 지난 3월 이후 넉 달 연속 3.6%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3%대 실업률을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로 판단한다. 하지만 경기는 정반대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예측 모델에 따르면, 15일 현재 2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는 -1.5%로, 1분기(-1.6%)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통상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실업률이 떨어지는데도 경기가 침체에 접어드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모두 12차례 경기 침체가 있었는데, 이 기간 실업률은 모두 6%보다 높았다. 또 경기 침체가 올 때마다 근로자 임금은 약 3%씩 줄었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 사이 근로자 임금은 1.6% 상승 중이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직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 한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저(低)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드문 일이다. 통상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경기 침체→실업률 증가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제 매체 배런스닷컴은 “안보 지출이 증가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4% 이하 실업률과 8% 이상 물가 상승률이 함께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과 빌 애크먼 퍼싱 스퀘어 CEO 등 월가 인사들이 연준에 더 공격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했다.

◇유동성 효과? 시차 때문?

경기와 고용의 엇박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코로나19 시기 풀었던 막대한 유동성의 여파가 아직까지 고용 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고용 있는 침체’ 또는 ‘성장 없는 고용’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코로나 발발 이후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책 명목으로 4조달러(약 5200조원)를 투입하는 등 막대한 돈을 풀었다. 허진욱 삼성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거 금융 위기 때와는 달리 코로나 직후 전례 없이 많은 돈을 풀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완전 고용에 복귀할 수 있었다”며 “반면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를 희생시키겠다는 신호가 분명해지면서 경기는 이미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갈수록 줄면서 고용과 경기의 상관관계가 희박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양임석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해서 생산량이 두 배로 늘지는 않는다”며 “경제 성장과 경기에 미치는 변수들이 다양해지면서 고용 호조가 반드시 경기 호조를 의미하지는 않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유력한 설명은 ‘시차’다. 경기 침체가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고용 시장에 미처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과 도매업 판매 등 다른 의미 있는 지표들은 이미 경기 침체를 가리키고 있지만, 고용 시장은 몇 달 뒤처질 수 있다”며 “당분간 고용률과 생산량 사이에서 이례적인 충돌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고용 있는 침체 언제까지

이런 분석에 따르면 고용 있는 침체라는 기현상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지난 75년간 물가상승률이 4%를 넘고 실업률이 5%를 밑돈 경우 2년 내에 예외 없이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금리 인상 효과가 시차를 두고 고용 둔화로 나타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감원에 들어가는 등 일부 업종에는 이미 경기 침체의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전체 인력(18만여 명)의 1%에 해당하는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고, 구글은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을 줄이기로 했다. 애플도 퇴사자의 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을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김태기 전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접객업 등 대면 서비스 분야가 다시 문을 열면서 전체 일자리는 늘었지만, 경제 전반을 이끄는 IT 업종 분야 등에서 고용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결국 고용 시장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의 구인난이 여전한 상황이어서 경기가 둔화하더라도 고용 호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허진욱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노동 시장에 초과 수요가 상당하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고용 증가 추세가 상당 기간 유지되면서 실업률은 크게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탄탄한 고용 시장이 경기 침체를 막는 최후의 보루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코로나 전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 등에 힘입어 미국 실업률은 3%대로 사실상 완전 고용 수준에 있었고, 그 흐름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이라며 “실업률이 여전히 낮다는 건 미국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은 건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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