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기업들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블룸버그는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이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채택해온 방식이지만 최근 밀가루에서 식용유까지 각종 비용이 치솟으며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화장지 브랜드 크리넥스는 몇 달 전만 해도 65장이던 갑티슈 용량을 최근 60장으로 줄였다. 미국인이 즐겨 찾는 초바니 플립스 요구르트 용량은 5.3온스에서 4.5온스로, 영국 네슬레의 아제라 아메리카노 커피는 100g에서 90g으로 줄었다. 미국 도미노피자와 버거킹은 치킨윙과 치킨너깃 개수를 각각 10조각에서 8조각으로 줄였다. 인도에서는 빔 주방 세제가 155g에서 135g으로 작아졌고, 일본 과자 업체 가루비는 채소칩 등 용량을 10% 줄이고 가격은 10% 올리기로 했다. 호주에서도 마스, 오레오 등 유명 브랜드들이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크리넥스의 소용량 화장지. 최근 티슈 용량이 65장(왼쪽)에서 60장(오른쪽)으로 줄었다. /AP 연합뉴스

국내도 사정이 비슷하다. 롯데제과는 작년 9월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줄이고, 꼬깔콘 과자 중량을 72g에서 67g으로 변경했다. 캔 음료 용량이나 만두 제품 중량을 줄인 곳도 있다. 아이스크림 크기도 갈수록 작아지는 추세다. 국내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용량이 줄었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는 업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 크기가 줄어든 제품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식당에서도 벌어진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한식당은 올 초 반찬에서 메추리알 장조림을 뺐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반찬 가짓수를 줄인 것이다.

이전에는 공짜였던 각종 서비스나 물품에 비용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대한당구장협회는 당구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음료를 유료화할 것을 회원들에게 권고했다. 미국에선 식당을 중심으로 각종 ‘인플레이션 수수료’가 생겨났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받는 비현금 수수료, 주방 직원에게 줘야 하는 ‘감사 수수료’ 등이다. 포스(POS) 소프트웨어 개발사 라이트스피드가 최근 1년 동안 식당 6000곳을 분석한 결과 이처럼 새로운 서비스 수수료를 추가한 곳이 36.4% 증가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산하는 것은 고객들이 가격 인상은 바로 알아채지만, 중량이나 개수 같은 세부 사항은 유심히 관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선 소비자의 반감이나 가격 저항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방법인 셈이다. 히텐드라 차투르베디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용량 축소를 고려하면 미국의 실제 인플레이션은 20%에 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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