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S&P500 지수가 13% 하락하는 동안 두 자릿수 수익률을 올린 투자 기법이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종목을 매매하는 퀀트(Quant)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말까지 미국 헤지펀드 가운데 퀀트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5.1%로, 전체 증시는 물론 같은 기간 전체 헤지펀드 평균 수익률 -1.9%를 크게 앞질렀다. 헤지펀드의 퀀트 전략을 복제한 DBMF ETF도 올 들어 23% 올랐다. 2020년 코로나 급등락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며 체면을 구겼던 퀀트 펀드가 최근 하락장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일러스트=김영석

◇감정 없는 기계, 하락장에서 위력

전문가들은 중립적이고 냉철하게 시장을 볼 수 있다는 점을 퀀트 전략의 강점으로 꼽는다. 기계가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판단하므로 사람이 분위기나 감정에 따라 투자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퀀트 투자는 기본적으로 ‘영업이익 증가율이 전년보다 10% 상승했고, 2년 전보다 주가가 20% 떨어진 종목’과 같은 계량적 투자 모델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모델에 들어맞는 종목이 나타나면 프로그램이 기계적으로 종목을 사들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또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를 것으로 판단되는 자산은 사들이고, 내릴 것 같은 자산은 공매도한다. 투자 대상은 주식부터 채권, 외환, 원자재, 파생 상품 등 다양하다. 이런 식으로 벤치마크(비교 대상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올리는 것이 퀀트 펀드의 목표다.

미국 메릴린치증권에서 전문 투자가로 일했던 양임석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보통 사람은 주가가 올라가는 것만 주목하지, 내려가는 주식은 잘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퀀트는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시장을 인간보다 냉철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하락장에서 사람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올해 상당수 미국의 퀀트 펀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값이 내려간 국채에 역(逆)으로 베팅해 큰 수익을 올렸다.

인간 투자자보다 훨씬 더 많은 종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퀀트 투자의 장점으로 꼽힌다. 인간 펀드 매니저가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종목은 30여 가지에 한정되는 반면, 퀀트는 규모는 작지만 높은 수익을 달성할 잠재력이 있는 종목을 샅샅이 골라낼 수 있다. 일반적 액티브 펀드나 헤지펀드보다 수수료가 싼 것도 장점이다.

퀀트 투자의 이런 장점이 극대화된 것이 2008년 금융 위기 때였다. 이때 S&P500지수가 약 40% 폭락하는 동안 퀀트 펀드는 연평균 18% 수익을 올렸다. 적지 않은 전문가는 현재의 투자 환경이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슷해 14년 만에 퀀트 투자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존 잭슨 머서 인베스트먼트 컨설팅 총괄은 “퀀트 펀드에 대한 기회가 무르익었다”고 했다.

◇퀀트펀드 10년 암흑기 끝날까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효과를 입증한 뒤 퀀트 투자는 보편적 투자 기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미국 헤지펀드 전문 매체 헤지위크(hedgeweek)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헤지펀드의 약 22%가 퀀트 기법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국 시장만 해도 퀀트 펀드 규모가 3370억달러(약 426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통화 완화 정책이 대세를 이룬 지난 10여 년은 퀀트 펀드의 암흑기였다. 퀀트 펀드는 주로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종목을 담는데, 환율 변화 등 거시적 경제 변화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은 퀀트 펀드에는 악몽 그 자체였다. 이해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급반등하며 S&P500 지수는 연초 대비 16% 상승했지만, 미국의 대표적 퀀트 전문 운용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일부 펀드는 30%대 손실을 봤다. 레이 달리오가 이끄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핵심 펀드인 올웨더(All Weather) 역시 ‘모든 상황에 대처한다’는 신조와 무색하게 20%대 손실이 났다. 김홍곤 KB자산운용 인덱스퀀트 본부장은 “전염병이라는 돌발 변수에 따라 증시가 급등락했는데, 일부 퀀트 펀드에 입력된 컴퓨터 모델에는 코로나19 같은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보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초 국내 퀀트 펀드들이 일제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도 환율 변동이라는 돌발 변수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요 퀀트 펀드들은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을 중요하게 보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형주를 주로 담고 있었는데, 일본 엔화 가치가 갑자기 크게 떨어지면서 손실을 냈다. 양임석 교수는 “특히 상승장에서는 감(感)으로 크게 베팅하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퀀트는 이런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어 사람이 투자하는 펀드보다 수익률이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미 못 보는 국내 퀀트 펀드

미국 헤지펀드가 운용하는 퀀트 펀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공모형 퀀트 펀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 퀀트펀드 10개의 평균 수익률은 -10.24%다.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10.96%)과 비슷하고,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16.99%)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NH아문디 자산운용 관계자는 “국내 퀀트 펀드는 코스피를 기준으로 정해 놓고 그보다 1~3% 정도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다소 투기적이고 공격적 성향인 미국 퀀트 펀드와 절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퀀트라는 이름은 같지만, 목표 수익률과 세부적인 투자 기법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김동국 대신증권 상품솔루션부 부장은 “과거 데이터가 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며 “퀀트 펀드도 여러 금융 상품 가운데 하나일 뿐, 하락장의 대안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고 말했다. 김홍곤 KB자산운용 본부장은 “누가 어떤 데이터를 투입해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퀀트 펀드의 수익률도 큰 차이가 난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이를 결정하는 사람의 능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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