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복원된 직지(直指) 금속활자를 살펴보고 있다. 고려는 서양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민간의 서적 출판을 금지하는 제도 때문에 출판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신현종 기자

국가가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뛰어난 인재, 충분한 자본, 그리고 훌륭한 기술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재· 자본·기술은 충분히 있는데 사회가 발전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한국은 고려 시대 때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서양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무려 200년은 앞섰다. 고려는 금속활자를 만드는 인재·자본·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출판 선진국이 되지 못했다. 고려의 기술을 이어받은 조선에도 금속활자는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손으로 필사해서 책을 만들었다.

일본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화승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총으로 일본은 조선을 유린했다. 그런데 19세기 일본이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을 때, 일본의 주력 무기는 칼이었다. 사회가 발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쇠퇴했다.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의 정화(鄭和) 원정대는 세계 최고 대함대였다. 서구의 대항해 시대 이전에 중국은 세계 최고의 해양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에서 영국 군함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고 만다. 이때 중국의 해군력은 400년 전 정화 대함대만도 못했다.

인재·기술·자본이 모두 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발전에는 이런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는 사회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제도’를 제시했다. 사람들에게 좀 더 노력할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유도하는 제도를 구축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재·자본·기술은 제도에 비하면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이런 개념이 신제도주의이고, 더글러스 노스는 이 기여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아무리 금속활자를 가지고 있어도 책 출판이 자유롭지 않으면 출판업이 발전할 수 없다. 고려, 조선 시대에 민간인들은 마음대로 책을 출판할 수 없었다. 일본은 1630년에 총기 생산을 금지했고, 결국 칼 중심의 사무라이 시대로 돌아갔다. 명나라는 정화 대함대 이후 사람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금지했다. 대함대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 기술이 그냥 사라지고 만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만든 제도 아래서는 무용지물이다. 한국의 인터넷, 정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 정원은 정부 규제로 20년째 거의 제자리이고, 결국 인력 부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개개인이 노력을 해도 되는 제도, 노력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 결과에 따라 보상이 생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우리 정치권은 이런 일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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