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가 ‘대분기(大分岐·Great Divergence)’다. 17세기 이전 동양과 서양 사회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중국 문명은 결코 유럽 문명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양은 동양을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18세기 서구 유럽이 동양을 앞서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왜 산업혁명은 세계 다른 지역이 아닌 서유럽에서 발생했을까. 이것이 경제 발전과 관련된 대분기 문제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사회 제도 차이다. 동양 사회, 특히 중국에서는 부자가 되면 곤란했다. 부자가 되면 지방 수령이 온갖 죄목을 붙여서 잡아갔다. 감옥에서 풀려나려면 돈을 바쳐야 했다. 부자가 되고서도 잡혀가지 않으려면 권력자와 선이 닿아야 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조선 말기 기록을 보면, 권력과 연결되지 않은 부자들이 어떻게 관리들에게 재산을 빼앗기는지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이런 사회 제도, 관습 아래서는 돈을 벌려고 무언가를 발명하고 사업하려고 노력할 수 없다. 현상 유지는 되지만 경제가 성장할 수는 없다.
서유럽도 중세 시대에는 동양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국 명예혁명을 시작으로 사유재산권이 보장되기 시작한다. 사유재산 보장은 단순히 ‘그 재산이 네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거나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경찰·사법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면 경찰에 불려가거나 감옥에 갈 위협 없이 돈을 벌어도 된다. 이런 사회 풍조 덕분에 유럽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개량하고 발전시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산업 자본을 이루었다. 서양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동양을 앞서나가게 된 건 이런 제도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업가, 자산가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고의 과실 여부나 피해 규모로만 보면 법 원칙상 형사처벌을 받을 사안이 아닌데도 사업자, 대주주라는 이유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중대재해법이 대표적이다. 고의나 과실이 있으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과실이 없더라도 사업가라는 이유로 처벌한다. 처벌 수준도 벌금이 아니라 감옥에 넣는 징역형이 기본이다. 52시간제 위반도 징역형 대상이다. 단지 사업가라는 이유로 벌 주는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다. 동서양의 운명을 가른 대분기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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