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경제학은 정부의 적자 재정에 반대했다. 정부는 수입 내에서만 지출을 해야 하고, 돈을 빌려 써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이런 사조에 반기를 든 것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는 경제가 불황일 때 정부는 재정 적자를 보면서 경기 활성화를 하고, 그 빚은 호황일 때 갚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거시경제학은 이런 케인스 이론에서 출발한다.
사실 개인도 수입 내에서만 지출하는 것보다 돈을 빌리는 게 더 좋은 선택일 경우가 많다. 학비가 부족하면 돈을 빌려서라도 졸업하는 것이 더 낫다. 사업을 하는데 자본이 부족하면 빌려올 수 있다. 케인스는 정부도 이런 식으로 융통성 있게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고 봤다. 수입 내에서만 지출하는 정부보다 빚을 낼 줄 아는 정부가 훨씬 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다.
케인스의 재정적자론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케인스의 재정적자론은 악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케인스가 주장한 것은 불황일 때는 재정 적자, 호황일 때는 재정 흑자를 보면서 장기적으로 재정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국가들이 불황이든 호황이든 케인스를 방패 삼아 돈을 빌려 쓰기만 한다. 케인스의 재정적자론은 불황 때 정부가 적자를 보더라도 투자를 늘려 경제를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각국 정부는 그냥 당장 더 잘 먹기 위해 돈을 빌려 쓴다. 현재 전 세계에 만연한 재정 적자 중 상당수는 케인스가 주장한 재정 적자와 상관이 없다.
불황일 때 빚을 내고 호황일 때 갚아서 재정균형 맞추자는 이론국가 경제 세밀한 계획 없이그저 당장 잘 먹기 위해서 빚 내는 국가들 많아...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어떨까. 지금 한국에는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있다. 실제로 정부는 많은 빚을 계속해서 새로 내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나라 살림을 말해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017~18년 10조원대에서 2019년 54조, 2020년 112조, 2021년 90조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올해도 100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적자는 괜찮은 것일까, 문제 있는 것일까.
사실 케인스 재정적자론에서 액수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갚을 계획이 있으면서 단기적으로 빌리면 괜찮은 것이다. 언제 어떻게 갚을지 얘기하고 장기적으로 균형 재정을 이룬다면 케인스도 인정하는 재정 적자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돈을 쓰는 것만 생각하고 어떻게 갚을지 말이 없다면 그건 케인스가 말하는 정당한 재정 적자가 아니다. 향후 흑자는 예상할 수 없고 계속 적자만 예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지 케인스의 이름을 빌려 지금 당장 돈을 더 쓰기를 원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은 어느 쪽일까. 앞으로 정부 빚을 어떻게 갚겠다는 타당성 있는 계획을 들은 적이 있는가. 들은 적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 없는 재정 적자이고, 들은 적이 없다면 큰 걱정을 해야 하는 재정 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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