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42)씨는 작년 8월부터 퇴근 후 2~3시간씩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같은 배달 앱에 라이더(기사)로 등록해 자동차로 배달 업무를 한다. 수입은 운행 거리, 배달 수급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건당 평균 6000~8000원 정도다. 이씨는 “대출 이자도 늘고 생활비 부담이 커져서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다.
회사원 김모(32)씨는 작년부터 한정판 신발, 옷 등을 산 뒤 비싼 가격에 되파는 ‘리셀(resell)’에 뛰어들었다. 리셀 관련 커뮤니티에서 한정판 제품의 판매 정보를 얻어 수시로 온라인 응모를 한다. 김씨는 “구매에 성공하면 30~40% 비싼 가격에 재판매하는데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물가와 금리가 뛰자 부업이나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크게 늘고 있다. 생필품 가격과 유류비는 껑충 뛰는데 월급은 찔끔 오르자 부업으로 추가 소득 확보에 나선 것이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시장이 작년만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 결국 ‘엄테크(스마트폰으로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족’까지 ‘몸테크(몸으로 때우는 재테크)’족으로 변신해 부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얇아진 지갑 실질임금 제자리… 직장인 ‘제2의 월급’ 만들기 분투
지난해 직장인들의 통장에 찍힌 월급은 명목상으로는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늘긴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지난해 368만9000원(세전)으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2020년(1.1%)은 물론 2017~2019년 평균 상승률(4.0%)보다 높았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359만9000원으로 전년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7~2019년 평균 상승률(2.7%)보다 0.7%포인트 낮다.
올 들어 물가 상승이 더 가팔라지면서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 팍팍해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지출전망지수 증가율(전년 대비)은 지난해 6월 21.5%까지 올랐다가 지난달에는 6.5%까지 떨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인플레이션 심화로 가계의 실제 구매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며 “기업들도 원가 부담으로 인건비를 크게 올리기는 어려운 실정이어서 실질임금은 당분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르는 금리도 부담이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고정금리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6%로 3%대 중반이던 연초 대비 1~2%포인트가량 올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18조4000억원 늘어난다.
◇ “김부장은 김기사로 변신해 배달하더라” 알바 자리 찾아나선 40⋅50대 가장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지다 보니 직장인들은 어떻게든 추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취업포털 알바천국이 경력 5년 미만 직장인 100여 명을 지난 1월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78.5%)은 취업 후에도 아르바이트 병행을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아르바이트 지원 건수도 직장인 비율이 높은 30~50대를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대외 활동 위축, 생계지원금 등 영향으로 아르바이트 시장의 주축인 20대의 지원 건수는 감소한 반면, 40대와 50대는 각각 27.7%, 64.4% 늘어난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N잡러’ 확산의 배경을 침체된 시장 분위기에서 찾기도 한다. 팬데믹 이후 2020년 하반기부터 주가와 비트코인, 부동산 등 각종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직장인들이 투자에 열을 올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투자 위험이 커지자 노동을 통한 ‘소확수(작지만 확실한 수익)’ 찾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주식투자에 뛰어들어 작년까지 평균 30~40% 수익률을 냈던 직장인 이모(30)씨는 올해 투자한 종목들의 수익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최근 재능 중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디자인에 대해 교육해 주고 강의료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씨는 “시간 확보가 어려워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주식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면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일과 삶 균형 지켜야”
해외 직장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금융회사에 다니는 닉샤 마르코바츠(41)씨는 임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추가로 매입할 주택을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차량 유류비가 2배 올랐고, 식자재 가격도 폭등해 마트에서 장 보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라며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버거워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최근 3개월(작년 11월~올해 1월) 평균 임금이 작년 대비 3.8% 상승했으나 인플레이션 조정 후의 실질임금은 1.0% 하락했고, 독일은 작년 12월 실질임금이 1.4%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를 찍은 미국도 지난 2월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2.6% 줄었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작년 미국의 명목임금은 4.5% 상승해 198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물가 때문에 실질임금은 오히려 2.4%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부업에 몰두한 나머지 본업(本業)을 소홀히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고, 돈만 보고 회사를 찾다 보면 커리어가 꼬이게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는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도 투자이므로 단순히 돈을 얼마 더 벌 수 있는지뿐 아니라 그 투자가 나의 성장과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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