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 바티칸 에르도간(31)씨는 2년 전 터키의 한 IT 기업에서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이직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터키에서 살며 원격으로 근무한다. 달러화로 급여를 송금받아 터키 리라화로 환전해 생활비로 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남들처럼 외국으로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가족과 친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며 “리라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구매력이 늘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유로화로 돈을 벌고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이스탄불의 한 시장에서 장을 보는 여인. 터키 통화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터키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뉴시스

한 나라의 경제가 망가져 통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면 대부분 국민들은 고통받는다. 수입 물가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터키의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경제정책 때문에 달러화에 대한 리라화 가치가 5년 만에 5분의 1 토막이 났다. 이 기간 터키의 물가 상승률은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지난해 11월 물가 상승률은 21.3%에 달했다.

하지만 통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웃는 사람들이 있다. 에르도간씨처럼 원격으로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해외파 디지털 노마드족들이다. 다국적 기업들도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채용에 적극적이다. 터키 소프트웨어 산업협회 고눌 카말리 회장은 “다국적 기업이 동유럽 프로그래머를 채용하려면 월 5000~6000유로를 줘야 하지만, 터키 출신은 2500유로면 된다”며 “직원 입장에서도 터키 기업에서 받는 월급(약 1180유로)의 두 배 넘게 벌 수 있어 이득”이라고 말했다.

아예 낮은 통화 가치를 강점으로 내세워 디지털 노마드족 유치에 나선 곳도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시는 최근 남미 최초로 디지털 노마드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 당국은 1년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 지방소득세 면제, 따뜻한 날씨,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좋은 치안 등과 더불어 저렴한 환율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런 강점을 앞세워 앞으로 2년간 디지털 노마드족 2만2000명을 유치해 관광 수입 감소를 메꾼다는 계획이다. 오랜 경제난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페소화 환율은 5년 전 달러당 15페소에서 지금은 100페소가 넘는다(페소화 가치 하락).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지 사설 환전소에서는 1달러에 200페소까지 교환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입은 포르투갈, 그리스, 멕시코 등 36개 이상 국가도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신설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저마다 따뜻한 기후, 쾌적한 생활 환경 등과 함께 싼 통화, 저렴한 물가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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