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대(大)사직(Great Resignation) 열풍이 미국을 휩쓸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스스로 직장을 떠난 사람 수가 작년 11월 452만명, 9월에는 436만명을 기록했다. 비슷한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졌다면 2021년은 미국에서 역대 가장 많은 자발적 퇴사자가 발생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대사직 열풍은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11월 미국의 노동참여율은 61.8%로, 코로나19 발발 직전인 2019년 12월(63.3%)보다 1.5%포인트 낮아졌다. 미국 자영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가운데 51%는 직원을 고용하려 해도 사람을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리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용주들은 돈을 훨씬 더 주겠다고 해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어 울고 있다”고 했다. 대사직 열풍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코로나로 재발견한 일과 삶의 의미

사직 행렬은 서비스업 분야에 종사했던 저임금 노동자가 이끌었다. 미국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으로 미국에서 퇴사한 약 74만명이 호텔이나 술집, 레스토랑, 테마파크 같은 서비스업 분야에서 일했다. 방송은 샌디에이고에서 30여 년간 일했던 한 식당 총지배인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이 일하다 코로나로 휴직했는데, 그 기간 자신의 차고에 놀이방을 차려 두 아이와 함께 지냈다. 달라진 삶을 처음 경험하게 되자, 앞으로는 주 40시간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아 나섰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형편없는 일자리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도 일하는 방식과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처음 경험하면서, 사무실에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가령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 메타(Meta·옛 페이스북) 등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재택근무 기조를 유지한 반면, 애플은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사흘은 사무실에 나와 일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그러자 애플 직원들이 불만을 품고 이직하거나 인재들이 애플을 외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놀란 애플은 재택근무를 폭넓게 인정하고, 엔지니어에게 최대 18만달러 자사주를 부여하는 등의 회유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9국 근로자 1만2500명을 상대로 작년 5∼6월 시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근무해야 한다면 이직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실업급여 너무 후했나

그럼에도 미국의 대사직 열풍은 유별난 데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 노동참여율은 7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도 록다운(lockdown·봉쇄)이 풀린 뒤 직원들이 대부분 일자리로 돌아갔다. 나라마다 다른 지원 방식이 이런 차이를 불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코로나가 터지자 1000억유로(약 133조440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기업에 주는 방식으로 경기부양책을 폈다. 이를 받은 기업은 노동자의 이름을 직원 명부에서 삭제하지 않았고, 상황이 좋아지자 이들을 다시 일자리로 불러내 신속하게 직장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반면 미국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긴급 실업급여를 줬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주는 실업급여를 합하면 월 2400달러(285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굳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크루그먼 교수는 국내 언론 기고문에서 “유럽은 노동자들을 이전 일자리에 그대로 묶어둠으로써 신속한 직장 복귀를 이뤄냈지만, 미국은 과거 직장과 근로자들 간의 연결 고리를 상당 부분 끊어 놓았고, 결국 이로 인해 고용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자산 가격 상승에 되살아난 자신감

집값 등 자산 가격 상승이 사직을 촉진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주요 대형주 지수인 S&P 500 지수는 코로나 발발 초기인 2020년 3월 2950선에서 지난해 말 4790까지 올랐다. 주택 가격을 보여주는 전미 주택지수도 코로나 발발 후 작년 8월까지 14개월 연속 상승했다. 당장 벌이가 없어도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직 행렬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자가 부족한 시장으로 변하면서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압력을 가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됐다”며 “노동자는 힘을 갖게 됐고, 시장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월해진 지위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대거 파업에 나서면서 스트라익토버(Striketober·파업을 뜻하는 ‘Strike’와 10월을 뜻하는 ‘October’를 합친 말)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아예 스스로 사장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현재 미국 자영업자 수는 944만여명으로 2020년 4월(752만여명)보다 200만명 가까이 늘었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5.9%로 11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코로나19가 미국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일깨웠다”(WSJ)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도 일부 업종에서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달 내놓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1월 자발적 퇴사자의 수는 24만7000여 명이었는데, 작년 11월에는 29만명으로 5만명 증가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와 같은 임시일용직을 스스로 그만둔 사람의 수가 3만2000여명에서 4만9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정상 영업이 가능해지자 일부 음식점 등은 직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택배 같은 업종으로 완전히 옮겨간 것은 미국에서 벌어진 사직 현상과 무관치 않다”며 “고용주를 만나 직접 지시를 받아야 하는 직업 대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감을 찾고 돈을 벌겠다는 흐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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