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미국 뉴욕 월가(街)로 향했던 중국 기업들이 미·중 양국의 거센 압박에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민감한 정보를 미국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미국 정부는 불투명한 회계로 투자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계심에 미국 상장 중국 기업을 옥죄고 있다. 양국 정부 눈치를 보는 데 지친 일부 중국 기업은 결국 어렵게 입성한 뉴욕 증시에서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퇴장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런 ‘정치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앞다퉈 뉴욕 증시에서 거래되는 중국 기업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인 레이스캐피털의 이디스 영 파트너는 “(미국에 상장된) 많은 중국 기업들이 미·중 양국 정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얼음 판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기업 의 시련/일러스트=김영석

◇시련 겪는 뉴욕의 中기업들

미국에 간 중국 기업들의 위태로운 상황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253개 중국 기업 중 주요 95개 기업 주가를 반영하는 나스닥 골든드래곤 차이나 지수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기준 8817.84로 올해 들어 43% 하락했고, 올해 2월 고점(2만688.32)과 비교하면 57.4%나 떨어졌다. 이 지수는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의 자진 상장 폐지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일 하루에만 9.1% 폭락했는데, 일간 하락률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컸다. 이 지수는 올해 2월 이후 여덟 번이나 하루 5% 이상 떨어졌다. S&P 500 지수가 하루 5% 이상 낙폭을 기록한 것은 지난 10년간 다섯 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나스닥 골든드래곤 차이나 지수에 반영된 95개 기업의 2월 이후 시가총액 손실 규모는 이달 초 기준 1조1000억달러(약 1297조원)로 올해 우리나라 본예산(558조원)의 2.3배가 넘는다. 미국 자산운용사 ER셰어즈의 에바 아도스 최고투자전략가는 “불확실성이 큰 상태여서 중국 기업에 대한 노출(투자)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 다툼에 사면초가

올 들어 중국 기업들이 수난을 겪는 배경에는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된 미·중 간 패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안보 및 무역 분야를 중심으로 깊어지던 미·중 갈등은 작년 중국 루이싱커피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주식시장으로까지 확전됐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렸던 루이싱커피는 2019년 미국 나스닥에 입성했으나 그해 2~3분기 매출을 최소 22억위안(약 4070억원) 부풀렸다 발각돼 투자자들에게 수조원대 손실을 입히고 작년 6월 상장 폐지됐다. 공산당 통제하에 자유주의 시장 질서를 해치는 중국 기업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미국은 루이싱커피 사건 이후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미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던 중국 기업에 칼끝을 겨누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상장 중국 기업들은 미·중이 2013년 맺은 협정에 따라 미 당국의 회계 감리를 받지 않고, 중국 증권감독위원회(CSRC) 감리로 대체해왔는데 미 의회는 작년 12월 이러한 특혜를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외국기업책임법)을 통과시켰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달 초 “회계 감찰을 3년 연속 거부하는 해외 기업은 상장 폐지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으로 향하는 기업들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면서 중국 기업들은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다. 중국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해외 법인을 거쳐 편법으로 미국에 상장하는 자국 기업을 제재하진 않았으나 최근 들어 역외 상장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중국 내 지리 및 주요 시설 정보,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플랫폼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국가 안보 관련 민감한 정보들이 새어나갈 수 있음을 우려하게 된 것이다. 올해 6월 말 디디추싱이 뉴욕에 상장하자마자 중국 당국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근거로 디디추싱의 앱 다운로드를 금지하고, 이 잡듯이 조사에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다. 당국의 압박에 디디추싱은 상장 후 6개월도 안 돼서 백기(白旗)를 들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셀리나 시아 연구원은 “미·중 상호 견제에 의한 각종 정책들이 중국 기업들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스닥 골든드래건 차이나지수

◇“추세적 반등 어려울 듯”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최근 급락한 만큼, 당분간은 추가 폭락이 없을 수도 있다. 미 규제에 따른 상장폐지도 2025년에나 벌어질 일이어서 현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시티그룹의 분석가인 알리샤 얍은 “중국 기업 상장 폐지에 대한 시장의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상장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반등 추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고, 중국 역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강화와 더불어 체제 단속 차원에서 자국의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등 기대감이 희미해지면서 저가 매수세도 실종됐다. 골든드래곤 차이나 지수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르는 ETF(상장지수펀드)인 ‘인베스코 골든드래곤차이나’에는 올해 1~10월 9363만달러(약 1100억원)가 순유입됐으나 최근 한 달 사이 613만달러(약 73억원)가 빠져나갔다. NH투자증권 박인금 연구원은 “향후 미국 상장 중국 기업의 상장 폐지와 홍콩시장으로의 2차 상장 시도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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