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업 대부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 관리는 가장 초기 단계(the very beginning)입니다.”
경영 리스크 분석 및 관리 분야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꼽히는 마쉬(Marsh)에서 아시아 지역을 총괄 관리하는 데이비드 제이콥 마쉬 아시아 대표는 WEEKLY BIZ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나 사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ESG 경영 전략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구 지역 기업들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제이콥 대표는 “서구에선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ERM(Enterprise Risk Management·기업 위험 관리)을 통해 기업을 둘러싼 모든 위험을 평가하고 통제·활용하는 업무가 자리 잡았지만, 아시아 기업에선 여전히 리스크 관리를 전담하는 직원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제이콥 대표의 지적은 한국 기업에 그대로 적용된다. 함께 인터뷰를 한 마쉬 한국지사(마쉬 코리아) 이형구 사장은 “한국의 ESG 평가인 KCGS(한국기업지배구조원 주관)만 해도 (평가 등급을 매기기 위해) 170여 개의 질문을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답변조차 못하고 있다”며 “작년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도 아주 극소수의 회사만 답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마쉬는 한국 포함 전 세계 130국에 직원 4만명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기업의 위험 요소를 각종 데이터로 분석해 적합한 보험 상품을 중개해 주는 것이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작년 글로벌 매출만 86억2600만달러(약 10조3000억원)에 달한다. 그만큼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안고 있는 리스크 요인과 내밀한 고민을 깊숙이 알고 있다. 기업 고객들에게 일종의 고민 상담사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개별 기업 사례에는 굳게 함구한 제이콥 대표는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 급증하면서 ESG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요즘 기업들은 앞으로 30년 후 자사의 부동산 자산이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 많다”며 “기록적인 폭염과 5등급(풍속 253.7㎞/h 이상) 수퍼 태풍의 등장,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홍수 우려 등 물리적 위험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보험들은 손실 규모에 따라 보험금이 정해지는 만큼 기후변화나 팬데믹 같은 세계적 규모의 재난에는 제대로 된 보험을 제공할 수 없었다. 피해 규모 예측이 힘들뿐더러 막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 기술 발달로 손실 규모가 아닌 날씨 통계 같은 객관적 지표에 따라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수형 보험(parametric insurance)’이 등장하면서 ESG 리스크 역시 보험으로 보호되는 영역에 편입되고 있다. 문제는 보험업계가 전례 없는 대규모 위험을 다루는 만큼 보험 계약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다는 점이다. 제이콥 대표는 “기업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보험사들은 보험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보험의 보호를 받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제이콥 대표는 “한국이 앞으로 기후변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에너지 전환에 대한 민관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와 은행, 에너지 기업과 보험업계가 손을 잡고 탈(脫)탄소 전환을 담보로 이상기후에 대한 보험 인수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형구 사장은 “해상 풍력발전 같은 신기술 프로젝트는 생산 단가가 높고 건설 및 운영이 어려워 보험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인 데다 태풍 같은 위험에 대한 노출도 커서 보험사들이 인수를 꺼린다”며 “민관 협력 없이는 이런 신사업이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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