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전 직원에게 공개하던 내부 온라인 토론 그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지난달 중순 발표했다. 이 회사는 ‘워크플레이스’라는 협업 도구를 통해 활발하게 사내 토론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플랫폼 안전성’이나 ‘선거 공정성’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토론은 열람 권한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직원이었던 프랜시스 하우건이 미 의회에 이른바 ‘페이스북 페이퍼’로 불리는 수백 건의 내부 문건을 제출하며 폭로에 나선 뒤 이뤄진 조치였다. 페이스북은 성명에서 “내부 문건 유출은 수십억명이 이용하는 플랫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팀의 효율성과 사기를 저하시킨다”며 “민감한 주제와 관련해 일하는 직원을 외부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복잡한 주제가 잘못 전달돼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대표적인 성공 요인으로 꼽혔던 투명성과 개방성을 포기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직원들이 직급과 부서에 관계없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회의 내용과 데이터, 연구 결과 등을 공유해 전 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최근 내부 고발과 내부 문건 유출 등 직원 행동주의가 확산하자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내부 정보 통제 강화에 나선 것이다.
◇문 걸어 잠그는 실리콘밸리
개방적인 조직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구글도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구글은 1999년부터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 제도를 운영해왔다. 매주 경영진과 전 직원이 회사 정보를 공유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직원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킬 수 있어 여러 기업이 이 제도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타운홀 미팅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 잇따라 언론에 유출되자 제도를 대폭 축소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불행하게도 매주 타운홀 미팅 내용을 외부에 공유하려는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며 회의를 월 1회로 줄이고, 회의 안건도 ‘제품과 비즈니스 전략’으로 제한했다.
자비드 프레처 알파벳노동조합 간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과거엔 투명성과 피드백이 타운홀 미팅의 핵심이었지만, 요즘에는 날카로운 질문을 해도 모호한 답변만 돌아온다고 직원들이 느끼고 있다”며 “이런 변화 때문에 경영진과 일부 직원 간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구글은 올해 2월에는 내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인공지능 윤리팀의 마거릿 미첼 공동 책임자를 해고했다.
직원들의 솔직한 피드백과 내부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넷플릭스도 최근 투명성 위기를 겪고 있다. 수차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방송인 데이브 샤펠의 코미디 쇼 ‘더 클로저’ 방영을 회사가 밀어붙이자 일부 직원은 파업으로 반발했다. 그러자 넷플릭스는 파업을 주도하고 제작비 등 기밀 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직원을 해고했다. 넷플릭스는 “파업 때문이 아니라 기밀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의심돼 해고 조치를 한 것”이라며 “신뢰와 투명성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회사의 핵심”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 내 다른 기업들과 달리 비밀주의로 유명한 애플은 최근 들어 정보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 타운홀 미팅에서 직원 백신 접종과 관련된 팀 쿡 CEO의 발언이 언론에 유출되자 쿡 CEO는 전체 직원들에게 경고 메일을 보냈다. “미팅 내용을 유출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며 “애플은 회의 내용의 세부사항 공개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애슐리 예비크 애플 매니저는 쿡 CEO의 이메일이 “근로자가 의사소통할 권리와 집단 행동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제소했다. 그러자 애플은 예비크 매니저가 회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즉각 해고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타운홀 미팅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지목된 제네키 패리시 매니저도 해고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투명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한 조직 장벽과 독재 수준의 비밀주의를 바탕으로 번창했다”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페이스북과 구글 등 다른 기업도 애플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했다.
◇판교는 ‘블라인드 주의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의 IT(정보) 기업들은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를 통한 내부 고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최대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초 블라인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불공정한 성과급 제도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CEO와 창업자가 나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를 열거나, 인사 제도 개선을 위한 특별 대응팀을 꾸리기도 했다. 직원 보상도 강화해 카카오는 전 직원에게 1인당 약 2200만원 수준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했고, 네이버는 3년간 매년 1000만원 상당의 자사주를 전 직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게임사 엔씨소프트는 트릭스터M, 블레이드앤소울2 등 신작 게임이 ‘기대 이하’라는 혹평을 받는 가운데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직원들의 글이 잇따라 블라인드에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블라인드 이용을 막기 위해 블라인드가 회사 메일 계정으로 보내는 가입 인증 이메일을 받을 수 없게 서버를 차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메일이 막혀도 명함을 인증하면 가입이 가능해 원천적으로 블라인드 이용을 막을 수는 없다. 이에 인사팀에서 매일 블라인드 게시글을 모니터링해 문제 게시글을 단체로 신고하고, 숨김 또는 삭제 처리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IT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이모(32)씨는 “블라인드가 활성화되면서 내부 불공정을 고발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익명성에 기대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도 많다”며 “블라인드 검열은 인사팀에 필수 불가결한 업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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