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tapering)’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시장에는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테이퍼링은 중앙은행이 국채, MBS(주택저당증권), 회사채 같은 자산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던 것(양적완화)을 서서히 멈추는 것을 말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연례 회의인 ‘잭슨홀 미팅’에서 “올해 말부터 자산 매입 정책의 축소를 시작할 수 있다”며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을 한껏 높인 상황이다.
테이퍼링은 올해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중앙은행의 돈풀기가 전 세계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 ‘붐’의 주요 원인이며, 따라서 돈풀기가 줄면 거품도 꺼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월 의장 발언 이후 금융시장에선 과거 2013년 벌어졌던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이 재현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채권 매입 종료를 시사하자,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신흥국 환율이 급등(통화가치 하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회사와 대형 투자자들은 이에 대비해 주식·채권·원자재 등 주요 자산군의 포트폴리오 내 투자 비중을 조정하고, 자산별 옥석(玉石) 가리기에 분주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톰 스티븐슨 투자 디렉터는 “(유동성) 파티에서 술이 담긴 ‘펀치 볼(punch bowl)’을 치워야 하는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테이퍼링 시작은 연말, 금리 인상은 내년
테이퍼링 일정은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가 ‘9월 확정, 10월 선포, 12월 시행’을 예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 등은 “연준이 12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시작으로 회의가 열릴 때마다 자산 매입 규모를 50억~100억달러(약 5조8000억~11조6000억원)씩 줄여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준은 작년 6월부터 매달 국채와 MBS를 각각 800억달러, 400억달러씩 총 1200억달러(약 139조원) 규모로 매입해왔다. 예상대로면 내년 11월쯤 자산 매입 규모가 ‘0(제로)’가 된다. 일각에서는 테이퍼링 일정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일부 연준 위원들이 (예상보다 빠른) 내년 중반쯤 ‘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끝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선 테이퍼링에 뒤따를 기준금리 인상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연준이 테이퍼링을 끝내고 1년 뒤 금리를 올렸다. 따라서 “이번 금리 인상 시점은 2023년 하반기쯤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공식 실업률은 노동시장의 실제 침체를 과소평가하고 있고, 노동시장 참가율 회복이 뒤처지고 있다”며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NH투자증권 안기태 연구원은 “지난 5~8월 글로벌 생산 차질과 7~8월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일부 서비스업 매출 타격 등을 감안하면 9월 FOMC에서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햐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뒤로 미루는 명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장금리’ 인상 대비… 주식은 가치주로
테이퍼링을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반기기도 한다. 장현철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테이퍼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 상황이 진정됐다는 뜻이고, 경기에 대한 자신감 표출이기도 해서 호재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S&P500, 나스닥 지수는 잭슨홀 미팅 직후인 지난달 30일 각각 0.4%, 0.9% 상승했고, 코스피도 같은 날 0.3% 올랐다. 지금이 경기 확장 국면 초입이라, 증시가 테이퍼링 충격에 동요할 가능성이 작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 연구원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기선행지수에 따르면 (지금은) 확장 국면에 진입한 지 6개월째”라며 “과거를 보면 확장 국면이 최소 2년 정도는 이어졌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엔 일단 “테이퍼링보다 ‘시장금리’ 상승에 주목하라”는 의견이 많다. 현재 경기 회복 속도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연 1.3%대에 머무는 미국 장기 국채(10년물) 금리가 곧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금리는 기업이나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급격하게 오르면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장은 “주요 IB(투자은행)들이 10년물 금리가 연내 1.9~2.0%, 내년에는 2%대 중반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고 했다.
만약 금리 인상이 빠르게 진행된다면 “가격이 내려가는 채권 투자는 자제하고, 주식은 듀레이션(duration)이 짧은 종목이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듀레이션은 배당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을 뜻한다. 현재 수익이 많지 않지만, 장기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성장주)은 듀레이션이 길다. 반대로 성장은 완만하지만 성숙한 기업(가치주)의 듀레이션이 짧다. 원자재의 경우 구리 등의 산업용 금속을 제외하면 투자 전망이 밝지 않다. 편 부장은 “금리가 오르면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달러로 표시되는 원자재 가격은 상승하기 어렵다”며 “다만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구리 쪽 수요는 좋은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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