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프랑스를 거쳐 독일⋅체코를 찍고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중국 대표 게임 업체인 텐센트(騰訊)가 올해 투자한 나라들이다. 8월까지 유럽 6국에서 무려 7개 게임 업체의 지분을 사들였다. 텐센트뿐만이 아니다. 중국 2위 게임 기업 넷이즈(网易)도 메타버스(metaverse·가상세계) 게임 제작사 중심으로 수천만달러짜리 투자를 이어가고 있고, 틱톡을 서비스하는 바이트댄스(字節跳動)는 아예 투자 펀드를 설립, 성장 단계의 유망 게임사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산 게임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중이었다. 모바일 게임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세계 시장의 약 40%(매출 기준)를 이미 중국산 게임이 차지했을 정도다. 세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이젠 해외 게임사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며 중국 게임 산업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장조사 업체 니코 파트너스는 “중국이 글로벌 게임 산업의 지배자가 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겉으론 해외 진출, 실상은 문화 패권
중국 게임 산업의 해외 진출은 표면적으로는 중국 내 빅테크 규제, 특히 게임에 대한 ‘탄압’에 가까울 정도의 조치가 원인으로 꼽힌다. ‘게임은 전자 마약’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청소년들에게 평일 게임을 금지하는 중국판 셧다운 제도도 시행됐다. “안이 막히니 생존을 위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중국 게임 업체들의 행보가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와 연관되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게임을 통해 전 세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식 가치의 침투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지난 7월 “중국의 대형 기술 기업들이 전 세계 게임 스튜디오를 싹쓸이하고 있으며, 인수한 게임사를 중국적 가치를 홍보하는 데 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단적으로 게임 내 착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중국인, 악역은 서구권 캐릭터 같은 설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나다 연구기관인 미래혁신센터(CIF)의 아비슈르 프라카시는 CNBC에 “게임에서 대만이나 인권과 관련된 소재를 금지하는 등, 게임을 통해 중국의 생각을 세계로 전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게임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쓰도록 장려함으로써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대한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군사·안보상의 목적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독일 빌트지는 최근 “텐센트가 3억달러를 들여 독일 게임사 크라이텍을 인수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이 회사가 개발한 게임 ‘크라이시스’와 ‘헌트쇼다운’에 사용된 첨단 시뮬레이션 엔진을 노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게임 엔진은 현재 미국과 여러 나토(NATO) 국가에서 쓰이는 군사훈련 시뮬레이션과 방위산업체의 각종 기술 개발에도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라이텍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기밀에 접근하거나, 해킹 시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임의 힘 과소평가…“전략적 실수 될 것”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 동맹국의 전략적 사각지대(blind side)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서방의 정치인과 국제정치전략가들이 게임이 가진 잠재적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5G(5세대 이동통신)나 반도체 등 다른 기술 산업과 달리, 게임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실제로 텐센트가 지난 7월 소닉 레이싱 등을 제작한 영국 게임 개발사 스모 그룹을 인수했을 때와 군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작하는 체코 보헤미아 인터랙티브 인수 당시 영국과 체코에서는 반대 의견의 거의 나오지 않았다.
독일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정책책임자 얀 바이덴펠트는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게임이 보안 등 다양한 영역에 끼치는 잠재적 영향이 다른 산업에서만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게임 산업과 개인 정보 보호, 국가 안보와의 관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또 IT(정보기술)·테크 산업 전문 투자자인 로돌포 로시니는 트위터에 “만약 텐센트가 신문이나 TV 방송국의 지분을 사들인다면 사람들이 분개하고 청문회가 열릴 것”이라며 게임이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나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게임에 대한 무관심이 중국이 파고드는 ‘틈’이 되고 ‘전략적 실수’가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게임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 국민의 개인 정보를 노린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컴퓨터 전문가이자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 연구원 데이브 아이텔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온라인 게이머가 제공하는 실명과 결제 정보, 생년월일 및 위치 데이터, 얼굴 사진이 중국 회사의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이것이 베이징(중국 정부)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며 “동영상 서비스 틱톡(Tiktok)보다 게임이 악용되기 훨씬 쉽다”고 주장했다. CNBC도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에 미국적 가치를 전파했다면, 중국이 게임을 통해 같은 시도를 할 수 있다”며 “다른 점은 할리우드는 미국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중국 빅테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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