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가 지난 20일 인간형 AI(인공지능) 로봇 ‘테슬라 봇’을 공개했다.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AI 로봇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이번 발표를 두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머스크 특유의 쇼맨십”이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동시에 “민간 우주 탐사와 전기차 시대를 개척한 머스크가 또 다른 미래를 예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장에서 홀로 반복 작업을 하는 산업용 제조 로봇을 넘어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서비스 로봇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렸다는 것이다. 머스크도 이날 “테슬라 봇의 용도는 자동차 제조가 아닌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며 서비스 로봇 영역의 진출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세계 로봇 시장은 산업용 로봇이 주도해 왔다. 산업조사 전문기관 CHO 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전체 로봇 시장에서 산업용 로봇의 비율은 약 70%에 달한다.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의 절삭과 조립, 용접을 하는 로봇 설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서비스 로봇이 본격적으로 부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서 시장 판도의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AI 기술과 함께 클라우드(가상서버), 5G(5세대 이동통신), 센서 등 로봇의 두뇌와 오감(五感) 역할을 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 식품 제조와 의료 보조, 청소, 배달 같은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의 등장이 가능해졌다. 이어서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이 비대면 사회로의 변화를 부채질하고 서비스 자동화 수요를 창출, 서비스 로봇 시장을 크게 키웠다. 국제로봇연맹(IFR)은 팬데믹 효과로 2020년 기준 204억 달러(약 23조8782억원)로 추산되는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가 2023년에는 2배 수준인 398억 달러(약 46조5859억원)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리부터 네일아트, 간호 보조까지
서비스 로봇 하면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 로봇이나 자율주행 배송 로봇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최근엔 요리와 간병 등 보다 정교한 업무도 수행 가능한 로봇들이 시장에 나오며 서비스 로봇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1921년 창업한 미국 햄버거 체인 화이트캐슬은 작년 9월부터 복합 관절을 가진 팔 형태의 주방용 서비스 로봇 ‘플리피(Flippy)’를 도입, 올해 전국 매장 10곳에 확대 적용해 사용 중이다. 플리피는 AI를 이용해 햄버거뿐 아니라 감자튀김, 생선 필레, 너겟 등 19가지 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또 학습 능력도 뛰어나 30분이면 새로운 메뉴 제조법을 익힐 수 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네일아트 로봇도 등장했다. 미국 스타트업 클록워크(Clockwork)는 지난 5월 말 샌프란시스코 매장을 열면서 네일아트 로봇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머신러닝 기반 AI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다양한 손톱 모양을 학습하고 피부 경계를 구별해낸다. 덕분에 사람마다 모양이 제각각인 손톱을 기존 네일 아트 전문가보다 빠른 속도로 칠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료는 7.99달러(약 9350원)로, 양손 기준 보통 30분 넘게 걸리는 네일아트 시간을 10분 내로 단축해준다.
간호 보조 로봇도 곧 나온다. 홍콩의 인공지능 로봇 개발 기업 핸슨 로보틱스가 ‘그레이스’라는 간호 업무 보조용 로봇을 개발해 내년에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레이스는 갈색 단발머리 여성의 모습을 본뜬 모양으로, 영어와 중국어로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가슴에 달린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측정하는 등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RaaS와 클라우드로 낮아진 진입장벽
서비스 로봇 시장 확대의 최대 걸림돌은 높은 제품 가격이었다. 오랜 개발 기간과 함께 다양한 기술의 집약체인 서비스 전문 로봇은 한 대에 수천만원을 뛰어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할 정도로 대량 생산이 되는 공장에 납품되는 산업용 로봇과 달리, 일반 소비자나 소규모 사업체를 중심으로 판매되는 만큼 가격이 비쌌고, 따라서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이른바 ‘구독형 로봇 임대 서비스(RaaS·Robotics-as-a-service)’다. 매달 일정액을 내는 방식으로 비용 부담을 덜어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다. 화이트캐슬이 도입한 플리피의 비즈니스 모델 역시 RaaS다. 플리피를 개발한 미소로보틱스의 벅 조던 사장은 “(RaaS를 통해) 로봇 한 대당 월 임대료를 2000달러까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019년 기준 4233달러에 달한다.
클라우드 기술 역시 가격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AI가 학습(머신러닝)을 하려면 대규모 데이터 연산을 수행하는 고성능 컴퓨터를 탑재해야 하는데, 이는 곧 로봇의 비용 상승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술을 이용하면 인터넷으로 가상 서버에 연결해 이러한 연산 작업을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일일이 고성능 컴퓨터를 탑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두뇌(원격 컴퓨터)로 다수의 로봇을 통제할 수 있게 되니 전력 소모도 크게 줄여준다. 수십 대 로봇의 AI 소프트웨어를 한 번에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어지는 것은 덤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트랙티카는 “클라우드 로봇 시장 규모가 2018년 53억달러에서 2025년 1704억 달러로 7년 새 32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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