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의 성적을 냈다. 일각에선 “40여 년 만의 최악 성적”이란 혹평이 나왔지만, 대중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전에는 메달을 딴 선수, 특히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폭발적 응원을 보냈지만 이번엔 메달을 못 딴 선수에게도 많은 관심과 격려가 쏟아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선수들의 모습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경쟁 사회 중 하나다. 뭐든지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뚜렷한 편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winners take all), 즉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대부분의 보상을 가져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보고 어떻게든 승리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승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 사회의 꼭대기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국인이 자본주의 시장 경쟁 체제에 길들여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1970년대 이후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이른바 ‘경제 중심주의’의 폐해 중 하나란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정작 경제학에서는 승자독식을 경계한다.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쟁력 우위를 갖고 있는 사람, 즉 승자에게 많은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의 승자에게만 모든 보상이 돌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승자독식 게임에는 사람들이 참여하려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개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런 게임은 기대되는 이득보다 손실이 너무 크다. 시장은 다수의 경쟁자가 참여해야 성립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 참여자가 적으면 시장이 만들어지기 어렵고, 설사 그렇더라도 활발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제활동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인호(경제학) 서울대 교수가 최근 ‘패자에 대한 경제학’이란 논문을 통해 이런 문제를 다뤘다. 시장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내고, 패자는 ‘패배의 대가’를 치른다. 시장 참여자(기업)들은 패배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하며, 이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패자에 대한 배려는 이러한 시장 경쟁이 지속되고 또 긍정적 효과를 내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패자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경쟁은 성립하지 않았으며, 패자는 승자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는 운동 경기의 페이스 메이커(pacemaker)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자들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때로는 격려와 응원 같은 ‘사회적 보상’도 보상이 될 수 있다. 올림픽에서처럼 말이다. 패자에 대한 배려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시장 경쟁을 유지하는 데도 패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 경제학의 ‘냉정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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