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대학생이 피어슨이 출시한 대학 교재 구독 서비스 '피어슨 플러스'를 이용하고 있다. /피어슨

177년 역사의 세계 최대 대학 교재 출판업체 피어슨(Pearson)이 지난달 폭탄 선언을 했다. 권당 수십만원짜리 대학 교재 1500권을 월 14.99달러(약 1만7000원)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 앱 ‘피어슨 플러스’를 내놓은 것이다. 피어슨이 파는 캠벨 생물학은 한 권 값이 224달러(약 26만원)에 달한다. 교재 값이 비싸다 보니 미국 대학생들은 새 책 대신 중고 책을 샀고, 새 책이 팔리지 않으니 피어슨의 매출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피어슨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앤디 버드 전 월트디즈니 회장이 디지털 기반의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그는 “음악 업계가 음악 파일 다운로드(소유)에서 스트리밍으로 옮겨간 것처럼, 피어슨도 ‘소유’에서 ‘접근 모델’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신문과 우유 배달에서 시작된 구독 경제가 디지털 플랫폼과 만나 산업 전(全)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젠 “구독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구독 경제는 소비자가 정해진 기간에 일정한 구독료를 내고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받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 경제 시장 규모는 2016년 25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40조1000억원으로 4년 만에 54.8% 성장했다. 미국에선 전자상거래 고객의 86%가 구독 경제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비스를 5가지 이상 이용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는 2023년 전 세계 기업의 75%가 소비자와 직접 연결된 구독 경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 전망했다.

피어슨 플러스는 월 14.99달러에 대학 교재 1500권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피어슨

◇전방위 확산하는 구독 경제

구독 경제 초기엔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가 대표하는 영상·음악 등 콘텐츠 구독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엔 식료품·화장품·패션·가구 등 유통부터 금융, 모빌리티(이동 서비스),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이 디지털 플랫폼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취향에 맞는 구독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간 제휴도 활발해지면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구독 상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대형 IT(정보 기술) 공룡들의 구독 경제 선점 경쟁이 이를 가능케 했다. 가입자들에게 영상·음악·전자책 등의 콘텐츠, 전자상거래 할인 및 배송 혜택, 클라우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미국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 같은 구독 서비스를 추구한다. 쿠팡이 아마존 모델을 벤치마킹한 ‘쿠팡 로켓와우’ 멤버십이 대표적이다. 빠른 무료 배송에 동영상까지 보여준다. 쿠팡은 식품과 화장품, 문구, 패션 잡화까지 수천 가지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정기 배송 서비스도 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독점한 카카오와 검색 포털 1위 업체 네이버가 각각 카카오톡과 스마트스토어 서비스를 이용한 구독 경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네이버는 지난해 월 4900원을 내면 쇼핑 시 추가 적립금 혜택을 주고, 웹툰·음원·클라우드·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까지 골라서 이용할 수 있는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를 내놨고, 이달부터는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생필품과 꽃, 영양제, 이유식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정기 구독 옵션을 추가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지난 6월 카카오톡 내에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구독온(ON)’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SK텔레콤은 다음 달 월 9900원을 내면 11번가 무료 배송, OTT 웨이브, 음악 듣기 서비스 플로(FLO)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 ‘우주’를 출시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월 4900원을 내면 쇼핑 추가 적립에 웹툰과 음원, 동영상, 클라우드 저장 공간까지 골라 쓸 수 있는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를 내놨다. 이달부터는 네이버 쇼핑에 정기 구독 결제 옵션을 추가할 예정이다. /네이버
자료=KT경제경영연구소

◇대면 ‘공유’에서 비대면 ‘구독’으로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 이전 소비 트렌드는 ‘공유 경제’가 이끌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그 가치만큼 돈을 내고 ‘소유’해야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서, 소유하지 않아도 사용한 만큼만 대가를 내면 되는 ‘공유’로 전환한 일은 소비자들에게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차량을 공유하는 ‘우버’, 숙박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 사무 공간을 공유하는 ‘위워크’ 등 공유 경제 유니콘이 잇따라 탄생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물건이나 공간을 다른 사람과 나눠 써야 하는 공유 경제 모델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 구독 경제다.

구독 경제는 소유가 아니라는 점에선 공유 경제와 닮았지만, 개인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대면 모델이라는 점이 다르다. 정액제이기 때문에 사용한 만큼 지출해야 하는 소비 스트레스도 덜어준다. 기업으로서도 한 번에 높은 수익을 거두긴 어렵지만, 한번 구독하면 장기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고정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구 구조 변화도 구독 경제가 부상하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 소규모 가구인 1~2인 가구 비율은 60.2%로 이미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소비 시장의 중심도 40~60대에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로 이동하고 있다. 삼정KPMG는 지난 5월 발간한 ‘디지털 구독 경제 트렌드와 비즈니스 기회’ 보고서에서 “이들은 소유보다는 실질적 사용 가치와 직접 경험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합리적 가격으로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구독 경제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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