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견 기업에서 일하는 박모(34)씨는 점심때만 되면 밖에서 뭘 먹을지 고민이다. 5000원만 내면 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회사 직원 식당(사내 식당)이 있긴 하지만, 일이 바쁠 때가 아니면 거의 가지 않는다. 음식 질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는 “(사내 식당에서) 냉동 고기와 인스턴트 같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진 않다”며 “내 나름대로 종일 고생하는데 그런 밥을 먹으면 더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위계적 조직 문화에 기죽지 않고, 당당히 자기 할 말을 하는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 직장인들. 최근 이들 사이에서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사내 의견 개진을 넘어서, 외부에 공론화하기도 한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계열사 사내 급식을 담당하는 삼성웰스토리가 일감을 부당하게 지원받았다”며 역대 최대 규모인 과징금 2349억원 처분을 내리자, 현대차그룹의 직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형편없는 식사를 공급하는 현대그린푸드에 대해서도 부당 지원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싸고 편해 좋다던 사내 식당이 이런 식으로 점점 ‘찬밥 신세’가 되면서 급식 업체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른바 ‘맛점(맛있는 점심)’에 민감한 MZ세대 직장인들과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는 급식 업체의 애로를 Mint가 들여다봤다.

일러스트= 김영석

◇인터넷상의 ‘회사 밥 성토 대회’

직장인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선 사내 식당 밥을 찍어 올리고, 서로 적나라하게 평가하는 모습이 흔하다. 급식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이슈화하려고, 반대로 급식 질이 좋은 회사 직원들은 자랑하려 사명(社名)을 드러낸 채 식판 사진을 올린다. 서울의 한 대기업 직장인 이모(37)씨가 자기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식판 사진에는 ‘나물 양념이 제대로 버무려지지 않고, 건더기가 거의 없는 멀건 국물’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그는 “솔직히 창피하지만, 우리 회사 급식의 퀄리티(질)를 공개해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사내 식당 밥에 불만인 직장인들은 밖으로 나가서 먹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지방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산하 사업소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다. 경상북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30)씨는 “5km 이상 차 타고 나가야 괜찮은 식당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급식을 먹는다”고 했다.

이들과 달리 ‘초호화’ 급식 메뉴를 공개하며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고기가 두둑이 들어간 갈비탕, 육즙이 흘러나오는 스테이크 같은 메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엔씨소프트, 네이버, 데브시스터즈, 마이다스아이티, 한국램리서치 같은 게임·IT 기업들이 밥 잘 나오는 회사로 유명하다. 숙박·레저 예약 서비스 ‘여기어때’, 안마 의자 업체 ‘바디프랜드’ 등도 어지간한 외부 식당보다 훨씬 나은 급식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소문이 났다. 엔씨소프트 측은 “사내 식당에 메뉴 5가지 중 하나를 골라서 먹을 수 있고, 4가지를 제공하는 ‘테이크아웃’ 코너도 있다”고 설명했다. 질 좋은 식사로 직원들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특단 조치를 내리기도 한다. GS그룹은 ‘랍스터 급식’으로 화제가 됐던 고등학교 영양사를 지난해 스카우트했고, 현대자동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사에 유명 ‘푸드트럭’을 불러 급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부실 급식’ 원흉은 외주 업체?

사내 식당의 이른바 ‘부실 급식’에 불만을 터뜨리는 직장인들은 주로 회사와 계약한 외주 급식 업체를 ‘원흉’으로 지목한다. “급식 업체들이 성심성의껏 음식을 만들지 않고, 조리 역량이 떨어진다”는 식이다. 상당수 급식 업체는 이런 지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가슴앓이만 한다. 급식 질은 식자재 비용에 비례하는데, 급식 업체는 고객사에서 주는 돈에 맞춰 음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업체 고위 임원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식단가가 5000원이면 그 안에 인건비 및 다양한 운영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식자재 값으로는 식단가의 60% 정도(약 3000원)밖에 쓰지 못한다”면서 “3000원어치 식재료로 5000~6000원짜리 밥이 나올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등 사내 식당 밥이 좋기로 유명한 기업들의 식단가는 7000~8000원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식대(食代)가 전부가 아니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대기업 사내 식당 관리자는 “같은 식단가를 적용해 업체를 바꿨는데, 직원들 반응이 너무 안 좋아져서 바로 다른 업체로 바꾼 적이 있다”며 “꼭 돈이 음식 맛을 결정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보통 1~2년 단위로 기업과 사내 식당 운영 계약을 맺는 급식 업체들도 그 나름대로는 한정된 예산으로 어떻게든 급식 질을 높여 재계약을 따내려 안간힘을 쓴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는 마진율이 낮더라도 급식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이혁진 수석연구원은 “급식 업체들은 보통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식자재를 대량으로 매입해 그룹 내 외식 및 식자재 유통 등의 사업까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식자재 매입 단가를 낮추고, 유통기한이 짧은 식자재를 빠르게 소진하기 위해서라도 기업 대상 급식 제공 사업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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