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사태 이후 최저 임금을 둘러싼 논쟁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서민 경제 침체가 여전한 상황에서 막대한 돈 풀기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저소득 근로자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정치권이 최저 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경제 활동이 회복되는 한편으로 노동력 공급이 줄면서 인력난이 가중, 실질 최저임금이 껑충 뛰어오르는 현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지난해 큰 타격을 입은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급격한 최저 임금 인상이 오히려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와중에, 한국에서도 똑같은 논쟁이 노사(勞使) 간에 벌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의 영향이 세계 각국의 ‘임금 체계’까지 뒤흔들고 있는 상황을 Mint가 짚어봤다.
◇팬데믹 충격에 줄줄이 임금 인상
미국에선 최근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인력난이 빚어지며 실질 최저 임금이 급등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선 평균 시급이 30~40달러대(약 3만4000원~4만5000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지난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귀국한 상황에서 실업 급여를 받은 미국 내 근로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마다하며 벌어진 일이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이를 부추겼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는 “2025년까지 연방 최저임금을 현재의 7.25달러(8200원)에서 15달러(1만7000원)로 2배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주(州)별 최저임금이 따로 있는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 의회가 지난해 11월 8.56달러(약 9700원)인 최저 시급을 2026년까지 15달러(1만7000원)까지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고, 델라웨어·캘리포니아·코네티컷·매사추세츠·뉴저지 등도 늦어도 2025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인상하는 안을 추진 중이거나 확정했다.
EU(유럽연합)도 최저임금 인상에 적극적이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10월 EU 내 최저임금제 도입 방침을 발표했다. EU는 원래 단일화된 최저임금이 각국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27개 회원국이 소득과 물가 등 나라별 사정에 맞게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하지만 최근 입장이 급변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적정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이 팬데믹 위기에 따른 임금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고, 내수를 진작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EU 회원국 공통의 최저임금제 도입에 나섰다.
EU 집행위는 회원국 중위(中位)임금의 60%를 최저임금 하한선으로 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지난 4월 최저임금을 시간당 8.72파운드(약 1만3700원)에서 8.91파운드(약 1만4000원)로 2.2% 인상했고, 최저임금제가 없던 스위스 제네바주(州)도 주민투표를 통해 작년 10월부터 23스위스프랑(약 2만8000원)의 시급 하한선을 두기로 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1엔(약 10원) 올렸던 일본도 최근 “만성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 대대적인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제 회복에 찬물” 반발도 거세
하지만 최저 임금인상의 부작용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유럽에선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 등 이른바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EU 차원의 최저임금제 도입에 반대하고 나섰다. 별도의 최저임금제 없이 노사 간 단체교섭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최저 임금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이를 통해 28개 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시간당 43.5유로(약 5만8000원)의 평균 시급과 시간당 15유로(약 2만150원)의 최저 시급을 유지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저항도 불거지고 있다. 영국 BBC는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일부 고용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맞서) 근로자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이 많고,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와중에 인건비마저 오르면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돼 오히려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마이클 솔츠먼 미 고용정책연구소 이사는 “기업들이 직원 수를 줄이거나 복리후생비 및 수당을 줄일 수 있다”고 했고, 미국 의회예산국은 “연방 최저임금이 2025년까지 15달러로 인상되면 13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의 자동화를 부추겨 실업 문제를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인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 위원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열악해진 노동자들의 상황과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3.9% 오른 1만800원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과 고용주를 대변하는 사용자 위원들은 “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해 현 수준(8720원) 동결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최저임금 고시 법정 시한(8월 5일)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용춘 고용정책팀장은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62.6%로 OECD 국가 중 5위로 높은 편”이라며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은 구직자에게도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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