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국가 내 탄소(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전 세계적 ‘탄소 중립 선언’의 선두엔 EU(유럽연합)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혹한(酷寒)과 폭서(暴暑),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에 회원국 정부와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장 앞서 관련 정책을 선보이고, 또 실천하고 있다.
EU 내 저개발 지역의 개발과 원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EIB(유럽투자은행)도 지난해 11월 기후은행(Climate bank)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EIB 베르너 호이어 총재가 Mint를 만나 처음 꺼낸 이야기도 기후변화 대응 문제였다. 현재 기온과 해수면 상승 속도를 감안할 때, 앞으로 10년이 이른바 ‘마지막 기회’란 것이다. 호이어 총재는 “당장 올해부터 10년간 기후변화 대응에만 1조유로(약 1347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라며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아시아나 기업의 프로젝트에도 돈을 대겠다”고 했다.
◇재원의 50% 친환경에 투자
EIB는 현재 친환경 분야에서 세계 최대 자본력을 자랑하는 금융기관이다. 작년 말 기준 EIB의 총자산(Total assets)은 5542억9100만유로(약 749조6287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2020년 국가 예산(약 555조원)보다 많다. 호이어 총재는 “EU 회원국에서 2500억유로(약 338조3500억원) 이상을 지원받고, 연간 600억~900억유로도 녹색채권(Green bond) 발행으로 조달하는 등 자본시장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녹색 채권은 친환경 에너지 발전소와 전기·수소차 보급 같은 사업에 투자할 돈을 마련하려 발행하는 채권이다. EIB가 2007년 세계 최초로 발행, ‘녹색 금융’이라는 금융시장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최근에는 민간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발행하면서 시장이 커졌다. EIB는 녹색채권으로 총 337억유로를 끌어모아 전 세계 57국 266개 이상의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자됐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 분야가 주요 투자처다. 호이어 총재는 “지난 5년간 이 분야에 투입된 금액만 530억유로(약 71조7300억원)”라며 “2025년까지 투자의 절반 이상을 기후 대응 관련 프로젝트에 하려 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자금 조달액의 37%에 달하는 242억유로를 해상 부유(浮游)식 풍력 발전소를 개발하는 포르투갈의 윈드플러스, 차세대 연료 전지 기술을 개발 중인 에스토니아의 엘코젠,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 등에 투자했다.
◇전 세계로 투자 영역 넓힌다
호이어 총재는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이룩하려면 에너지 분야만큼이나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탄소 발생량을 더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EIB는 이를 위해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나 ESRF(유럽 싱크로트론 방사선 연구 시설) 같은 기초과학 프로젝트부터 AI(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5G(5세대 통신), 암 치료 기술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런 각종 첨단 기술 개발에 자본 144억유로(약 19조4900억원)를 조달했다. 그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석탄을 캐는 폴란드 광부가 2주 만에 스타트업 사장이 되진 않는다”며 “첨단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거듭해야 산업이 바뀌고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호이어 총재는 “투자 역시 앞으로 유럽에만 머물지 않을 계획”이라며 “저개발 지역인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한국이 있는 아시아와 남미 대륙 등 전 세계 모든 지역에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U 지역 국책은행을 넘어 지구의 기후은행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10년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비(非)유럽 지역에 780억유로(약 105조5700억원)를 지원해온 EIB는 지난달(6월)에도 동아프리카 지역 지열(地熱) 발전 사업에 8000만유로(약 1082억원) 대출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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