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자동차를 타고 가다 길이 막혀 도시 외곽의 꼬불꼬불 산길로 이동했더니, 차량의 AI(인공지능) 시스템이 위치를 파악해 위험도를 분석, “자동차 보험료가 5% 인상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가까스로 산길을 지나왔는데, 신호 대기 중 운도 없게 뒤차에 받혔다. 이번엔 신호등 옆에 달린 CCTV의 IoT(사물인터넷) 센서가 현장 사진을 찍어 알아서 보험사에 전송했다. 곧이어 손해율이 자동 판정되고, 보험 처리도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온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니 어느새 보상금이 통장에 입금됐다는 알림이 뜬다.

보험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더해진 이른바 ‘인슈어테크(Insurtech)가 만들 미래 얘기다.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융합을 뜻한다. AI와 IoT, 5G(5세대 이동통신), 블록체인 등이 결합하면서 보험 상품이 더 빠르고 편리하며 개인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관련 시장도 급속히 팽창 중이다. 시장 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올해 37억8000만달러(약 4조2900억원)인 인슈어테크 시장 규모가 2028년 609억8000만달러(약 69조2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연평균 예상 성장률이 48.8%다.

◇블록체인과 4차 혁명 기술 접목

인슈어테크는 금융에 첨단 기술을 도입한 핀테크(fintech·기술을 결합한 금융 서비스)의 일종이다. 2010년쯤부터 상품 가입(계약 심사), 보험금 청구, 손해사정, 지급 등 상품 운용의 전 과정에 하나둘씩 적용되기 시작했다. 2019년엔 인슈어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 비율이 핀테크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의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 기술도 접목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사전에 입력된 스크립트(명령어)를 블록체인이 자동으로 실행하게 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반 분산형 금융상품(디파이·DeFi)이 대표적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를 활용하면 보험 상품의 복잡한 업무들이 자동화되고 간편해진다. 예컨대 사고로 손을 다쳐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면, 예전엔 서류를 떼어 보험사에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 지정한 통장을 통해 보험금을 받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병·의원 진료 시스템과 보험사 계약 관리 시스템이 스마트 콘트랙트로 연동되는 인슈어테크에선 이 모든 과정이 수분 만에 끝난다. 병원에서 진단서 발급 버튼을 누르는 순간 보험 심사와 처리, 보험금 지급 등의 과정이 도미노처럼 자동으로 이뤄진다. 덩달아 보험료도 싸진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인슈어테크 덕분에 보험사도 (인건비와 관리비가 줄면서) 비용을 최대 30%까지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등장한 파라메트릭 보험(Parametric Insurance·지수형 보험)도 인슈어테크로 가능해졌다.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 피보험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와 관계없이 홍수라면 강우량, 지진이라면 진도(震度) 같은 객관적 지표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복잡하고 지난한 손해사정 과정 없이 신속하게 보험금이 지급돼 분쟁 우려를 차단한다. 2017년 프랑스 보험사 악사(AXA)가 도입한 비행기 연착 보상 보험도 스마트계약을 이용한 파라메트릭 보험이었다.

◇‘맞춤형’ 진화…보험사 사라질 수도

현재 국내 자동차 운전자의 절반가량이 쓴다는 다이렉트 보험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간편 보험금 청구는 인슈어테크의 초기 단계다. 다이렉트 보험 상품의 보험료 산정에는 이미 AI가 활용되고 있다. 업계는 이 분야에 AI와 IoT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개인 맞춤형 보험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행동 패턴에 맞춰 보험 상품의 내용과 보험료가 달라지는 사용기반보험(UBI) 상품이 대표적인 개인 맞춤형 보험이다.

미국에선 2016년 빔덴털(Beam Dental)이란 스타트업이 IoT가 적용된 스마트 칫솔을 이용해 UBI 상품을 내놨다. 칫솔의 센서로 피보험자의 치아 상태를 체크, 이를 개선할 방안을 끊임없이 조언해 준다. 이 과정에서 치아 건강이 좋아지면 보험료가 할인된다. 보험에 든 사람은 치아가 더 건강해져서,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이 줄어 윈윈(win-win)하는 구조다. 미국 메트로마일(Metromile)처럼 고객의 운전 거리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자동차 보험도 나오고 있다. 국내서도 이와 비슷한 보험 상품이 나오고 있다. 맥킨지는 “보험 상품의 주기가 더 자유로워지고 보상 대상도 세부화될 것”이라고 했다.

인슈어테크가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보험사의 역할이 사라질 수도 있다. 디파이의 일종인 ‘P2P(개인 대 개인) 보험’이 그런 경우다. 블록체인의 스마트 콘트랙트를 이용해 디파이 보험 상품을 만들어 보험료를 받는다. 적립된 보험료에서 운용 수수료를 떼고 남은 돈을 보험금으로 활용하고, 계약이 모두 끝났는데도 돈이 남으면 보험 가입자들에게 자동으로 나눠준다. 블록체인이 기존 보험사의 역할을 모두 대체하는 셈이다.

인슈어테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점점 더 많은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CB 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인슈어테크에 377건의 투자가 이뤄져 사상 최대치인 71억800만달러가 모였다. 2014년(8억6900만달러)과 비교하면 6년여 만에 718%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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