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발표된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중고차 가격이었다. 전월(4월)보다는 7.3%,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7%나 상승하며 전체 물가지수 상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지난 5월 중고차 실거래가는 지난해보다 6.7% 올랐고, 한국의 지난달 중고차 시세는 4월 대비 6.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중고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신차 출고가 지연된 탓으로 해석했다. 공급 측면의 문제다. 하지만 가격 상승세가 길어지면서 수요 측면의 요인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바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의 중고차 수요다. Z세대는 저성장시대에 각종 온라인 공유 플랫폼과 함께 자라면서 이전 세대보다 중고 물품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품의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고, 중고 소비를 환경에 기여하는 ‘합리적인 소비’로 여기는 경향도 강하다. 이들이 자동차 시장의 핵심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신차보다 중고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시장 수요자의 인구 특성이 달라지면서, 수요 자체가 크게 변화한 셈이다.
◇Z세대 “신차보다 중고차”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전 Z세대는 차량 소유에 부정적이었다. 시장조사업체 JD파워에 따르면 2004년 10~20대였던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는 그 해 60만7329대의 차량을 구매한 반면, 2019년의 Z세대는 한 해 48만8198대를 사는 데 그쳤다. Z세대 중엔 아예 면허를 따지 않는 사람도 많다. 미국 연방고속도로국(FHWA)에 따르면 10대가 면허를 소지한 비중은 2000년 48.2%에서 2019년 34.8%로 줄었다. 우버·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플랫폼을 쓰면서 면허 취득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꼈고, 차량 구매는 물론 보험·정비·주차 비용도 Z세대에겐 큰 부담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엔 차량 구매를 고려하는 Z세대가 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감염 우려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 이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영국 온라인 자동차 판매 사이트 오토트레이드 조사에 따르면 17~24세의 61%가 “팬데믹 기간에 저축한 돈으로 자동차를 살 계획”이라고 답했다.
Z세대는 신차 대신 중고차를 선택했다. 딜로이트 캐나다의 라이언 로빈슨 연구원은 “Z세대는 재정 우려로 중고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수익성 때문에 값싼 경차나 소형차 생산을 줄인 탓도 있다. Z세대는 부모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자란 탓에 다른 세대보다 지출에 좀 더 신중하고 빚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대부분이 학자금 대출 부담을 지고 사회에 나와 재정 압박이 심하다. 미국 학자금 대출 규모는 1조6000억달러(약 1787조원) 규모로 주택담보 대출에 이어 둘째로 많다. 1인당 대출액은 3만7000달러(약 4134만원)에 달한다.
◇중고차 거래 서비스 급성장
결국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되어도 Z세대 때문에 중고차 수요는 계속 높게 유지될 전망이다. 이에 힘입어 비대면으로 중고차를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고차계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카바나(Carvana)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이나 중개인 없이 100% 온라인으로 중고차 매매가 이뤄진다. 360도 고해상도 사진으로 자동차 외관과 내부의 미세한 흠집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고, 자동차 수리와 소유자 변경 이력도 볼 수 있다. 구입 후에는 전국 24곳의 차량 인도장에서 카바나가 제작한 특수 동전을 넣고 차량을 인수하거나, 집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다. 차량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7일 내에 전액 환불을 해주는 대담한 고객서비스도 해준다.
중고차 매입도 간편하게 이뤄진다. 차대 번호와 차량 정보만 입력하면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로 신속하게 예상 견적이 나온다. 현재 3만대 이상의 차량이 카바나에 등록돼 있다. 올 1분기 매출은 22억5000만달러(약 2조5548억원)로 전년보다 104% 늘었다. 이 중 57%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서 나왔다. 주가 역시 1년 전보다 132% 올랐다.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매년 발표하는 매출액 기준 미국 최대 기업 목록인 ‘포천 500’에 483위로 포함되기도 했다. 이 밖에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룸(Vroom)이 지난해 나스닥에 데뷔했고, 영국 카주(Cazoo) 역시 올해 중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국내에서도 중고차 거래 서비스 업체 ‘케이카’가 이르면 10월 업계 최초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케이카의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이용하면 매장 방문 없이 PC나 모바일로 직영 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다. 구매 후 3일간 구입한 차량을 운행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할 수 있다. 케이카의 내차사기 홈서비스 판매 비중은 2018년 24.8%에서 지난해 35%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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