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 윌리엄스 디피니티 재단 CEO(최고경영자)가 2018년 7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비욘드 블록 서울 서밋’ 행사에서 ‘인터넷 컴퓨터, 디지털 세계의 혁신’이라는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디피니티 재단

“오늘날 가상 화폐의 95%는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도미닉 윌리엄스 디피니티(Dfinity) 재단 CEO(최고경영자) 겸 수석과학자가 인터뷰 도중 불쑥 던진 말이다. 디피니티는 최근 가상 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체다. 그는 “진짜 세상을 바꿀 기술을 개발하려면 수많은 인재들의 오랜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그런 노력 없이 손쉽게 만든 블록체인은 그저 개인투자자의 돈을 훔치는 수단(토큰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라고 했다. “가상 화폐 투자를 하려면 우선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 보세요. 과학자와 암호학자, 엔지니어보다 마케팅·경영 인력이 많다면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다수의 가상 화폐 블록체인은 쓰레기(junk)라고 생각합니다.”

윌리엄스 CEO가 이렇게 확신에 가득 찬 발언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디피니티가 만든 가상 화폐 ICP(인터넷컴퓨터프로토콜)는 기존 블록체인 기술에서 한 발 더 나갔다. ICP를 매개로 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거대한 운영체제(OS)처럼 수십만대 이상의 컴퓨터들을 연결, 일종의 ‘분산형 수퍼 컴퓨터’를 만들어낸다. ICP 참여자는 이 수퍼 컴퓨터를 마치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서비스처럼 활용해 자신의 인터넷 웹사이트나 앱 서비스를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컴퓨터의 저장공간과 연산능력을 제공한 사람에게 코인을 준다. 서비스를 창출·제공한 대가로 가상 화폐가 발행되는 것이다.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기보다 가치를 매개하고(화폐) 저장하는(자산) 역할만 하는 기존 가상 화폐 블록체인과 차별화된다.

윌리엄스 CEO는 Mint와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디피니티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실행되는 메신저 서비스 ‘오픈챗’을 소개했다. /조선 DB

◇블록체인으로 만든 ‘수퍼 클라우드’

윌리엄스 CEO는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200여명의 최고 인재를 모아 5년이 걸렸다”고 했다. 디피니티의 연구 총책임자인 티모 행크는 독일 아헨 공과대의 수학·암호학 교수 출신이다. 그는 비트코인 채굴 속도를 20% 이상 끌어올리는 ‘에이식부스트(AsicBoost) 기술’을 개발, 블록체인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맥 매컬리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은 MS에서 DOS(도스)와 윈도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페이스북의 기술 담당 임원을, 벤 린 수석 엔지니어는 10년간 구글 수석 엔지니어를 지냈다. 윌리엄스 CEO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유럽의 인기 온라인 게임인 ‘파이트 마이 몬스터’를 개발했다.

디피니티의 ICP는 2020년 말부터 전 세계 1500여개 노드(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각각의 컴퓨터)에서 가동 중이다. 윌리엄스 CEO는 “인터넷상의 모든 서비스를 (ICP를 통해) 똑같이 구현할 수 있다”면서 오픈챗(OpenChat)이라는 메신저 서비스를 보여줬다. 아이디나 비밀번호 입력 없이 안면 인식으로 접속하고, 카카오톡처럼 친구별로 대화를 나누는 여러 채팅방이 펼쳐졌다. 친구에게 가상 화폐를 전송하는 것도 가능했다. 블록체인상에서 실행된다는 것 외엔 일반 메신저앱과 다를 바 없었다.

디피니티는 벌써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3사’의 경계 대상이 됐다. 기존 클라우드 시장의 판을 뒤흔들 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ICP는 기존 클라우드와 비교해 가격과 보안성 면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라우드 업계 1위(시장 점유율 32%) 업체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경우, 저장공간 기준 1기가바이트(GB)의 이용료는 연간 60~144달러(6만7000~16만1000원)에 달한다. 윌리엄스 CEO는 “반면 ICP상에서 1GB 저장 공간은 연간 5달러(5600원) 수준”이라고 했다. 기존 가격의 10분의 1 이하인 셈이다. 게다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바탕해 수십~수백만대의 컴퓨터에서 분산되어 작동하므로 해킹이 거의 불가능하다.

◇“빠르고 무한한 ‘세계 컴퓨터' 목표”

윌리엄스 CEO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초기 개발 과정에 참여하면서 ICP의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이더리움의 블록체인은 명령어(스크립트)를 입력해 실행할 수 있는 일종의 프로그래밍 도구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를 이용한 것이 가상 화폐를 이용한 분산형 금융상품, 디파이(De-Fi)다. 그는 “컴퓨터 코드(프로그램이)가 분산되고 공유된 네트워크를 통해 구현되는 세계 컴퓨터(World Computer)라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개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더리움이 상용화한 다음 해인 2016년 디피니티 재단을 설립해 ICP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비트코인이 60분, 이더리움이 10분 걸리는 복잡한 거래를 ICP는 2초 만에 할 수 있다”면서 “ICP가 일반 웹사이트 서비스에 사용되면 처리 속도가 밀리 초(1000분의 1초) 단위로 빨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CP가 기존 웹 이상의 속도와 무제한의 용량을 가지려면 100만개 이상의 노드가 필요하다. 윌리엄스 CEO는 “5년 안에 100만 노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업계에선 “쉽지 않다”는 예상도 많다. 일반 컴퓨터가 아닌, 비트코인 채굴이 가능한 수준의 고성능 컴퓨터 장치 100만개가 필요하다는 얘기라서다. 상용화한 지 6년 차인 이더리움만 해도 9일 기준 노드가 5661개에 불과하다.

가상 화폐 시장 침체와 함께 ICP 참여의 유인 역할을 하는 ICP 코인 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문제다. ICP 코인은 지난달 9일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 등에 상장했다. 이틀 만에 시가총액이 전체 가상 화폐 중 8위인 718억2013만달러(약 80조원)까지 늘었지만, 16일 기준 76억달러(약 8조5000억원)로 줄어든 상태다. 윌리엄스 CEO는 “기존 인터넷처럼 빠르면서, 무한한 용량을 가진 블록체인 기반 인터넷을 만들어 웹브라우저로 손쉽게 쓰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더 많은 사람이 ICP로 만든 서비스를 경험할수록 디피니티 생태계도 더 빨리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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