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곳곳에서 경제가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격 변동 폭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지수)는 0.9% 상승해 1982년 4월 이후 39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도 지난 5월 2.6%에 달해 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생산 단가를 가늠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4월 5.8%를 기록,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기업들은 원자재 등 생산 단가가 높아지면 가격을 올려 대응할 수밖에 없기에, 생산물가 상승은 보통 반년 안팎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지난해 전 세계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못지않은 악재(惡材)다. 가파른 물가 상승은 중산층의 소비 여력을 갉아먹는다. 또 시장금리를 끌어올려 올해 3월 말 기준 289조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정부·기업·가계 부채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의 공습에 투자자, 경제학자, 정책 당국 모두 바짝 긴장한 채 상황 진단과 처방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Mint가 에드 야디니 야데니리서치 대표, 호아킨 펠즈 핌코(Pimco) 상무,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어드바이저 CIO(최고투자책임자), 카림 바스타 트리플아이캐피털 CIO, 클라우디아 삼 제인패밀리인스티튜트 연구원 등 인플레이션 논쟁에 활발히 참여 중인 세계적 전문가 5명에게 현재 상황 진단과 향후 전망을 물었다.

그래픽=김의균

①연준 “물가 상승 일시적” vs 월가 투자자들 “몇 년간 지속”

현재 논쟁이 가장 치열한 지점은 인플레이션 지속 기간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이하 연준) 의장이 올해 초부터 인플레이션 문제를 논하며 습관처럼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쓴 탓이 크다. 그는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선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인내해야 한다”고 했고, 4월엔 “이번 일시적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물가 지표가 내년쯤이면 다시 2~3% 수준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이를 뒷받침하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전시(戰時) 부채와 전후 수요 회복으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20%까지 치솟았으나 1949년엔 다시 2%로 되돌아왔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일시적'이라는 연준의 주장에 회의적이다. 그 선봉에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서 있다. 그는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문제를 과소평가한다”고 주장했다. 부크바 CIO 역시 “원자재 가격과 운반 비용이 계속 오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봤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치명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운반 비용이에요.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트럭 등 운수업체가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을 겪으며 운반 비용도 치솟고 있어요. 지금은 무얼 만들려 해도 반드시 원재료·중간재를 옮기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그는 “이런 공급망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다소 안정돼도 물가 상승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막대한 정부 부채와 중앙은행의 돈 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속도에 제동을 걸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야디니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대응은 비주류 학설인 MMT(현대통화이론)의 주장처럼 다소 과격했다”며 “생활 물가 상승과 별개로 가상화폐·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 폭등까지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은 결코 한두 해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 삼 연구원은 “연준의 물가 상승률 목표가 ‘2% 안팎’이 아니라 ‘2% 이상’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팬데믹 위기를 넘기면 물가는 정상 궤도로 되돌아올 겁니다. 서머스 등 이른바 ‘구시대 인사’(old guard)들은 연준의 새 전략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어요.”

민트(Mint) '인플레이션 4대 궁금증'

②“연준 돈 풀기 못 멈춰…자산 가격 급락 가능성은 아직 낮아”

일부 전문가는 연준의 테이퍼링(tapering·유동성 공급 축소)과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연준이 가장 신경 쓰는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지수(PCE)마저 지난 4월 전년 같은 달보다 3.6% 오르는 등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월가 전문가들은 연준이 당장 돈 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준이 물가뿐 아니라 ‘완전 고용(full employment·키워드)’도 정책 목표로 세웠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달 말에도 “고용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다”고 강조했다. 핌코의 펠즈 상무는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 때 “연준, ECB,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최소한 2~3년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시장에 거품이 부풀어올라도 연준이 먼저 선제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작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에드 야디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연준은 원래 시장이 과열되기 전에 먼저 나서는 기관이었지만, ‘완전 고용 목표’를 추가하면서 이젠 물가 대응이 사후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야디니 대표는 따라서 자산 시장의 거품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공급 축소나 금리 인상이 빨리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시장에 거품이 있느냐고요? 물론이죠. 모든 자산에 거품이 껴 있다고 봐요. 그렇다고 해서 자산 시장이 당장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고 봅니다. 연준을 포함해 중앙은행이 현재의 통화 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주식 시장을 떠날 때가 아니에요.”

전문가들의 인플레이션 관련 발언

③“최대 피해자는 중산층과 서민…대책 세워야”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도미노 효과’다. 기업들은 평소에 섣불리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다른 기업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에게 금세 외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가격 압박이 심할 때 한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을 체감하는 것도 이때다. 이 과정에서 생활 밀접 품목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체감 물가가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더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의 5월 생활물가지수가 3.3% 오르면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림 바스타 트리플아이캐피털 CIO는 이런 점에서 물가 상승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중산층과 서민’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중산층·서민은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 소비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각국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대응을 한 것은 옳지만, 과도하게 빚을 져버리면 종국엔 중산층의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가팔라지면 정부도 부채 부담과 더불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어 중산층 피해에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자산 시장 거품으로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등에 중산층의 돈이 묶인 상태다. 갑작스러운 자산 시장의 ‘조정’이 발생하면 이는 미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경제적·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 경제·통화 관료들이 인플레이션 피해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물가 특집을 다룬 기사에서 “세계 경제가 1980년대 이후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둔감해진 것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어드바이저 CIO는 “파월 의장은 라이트급 선수라 그린스펀·버냉키 전 의장처럼 본인의 시각이 뚜렷하지 않고 눈치를 많이 본다”면서 “물가 문제도 마찬가지로, 상황은 너무나도 심각한데 그는 지금의 유동성 파티를 제 손으로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에드 야디니 야데니리서치 대표, 호아킨 펠즈 핌코(Pimco) 상무,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어드바이저 CIO(최고투자책임자), 카림 바스타 트리플아이캐피털 CIO, 클라우디아 삼 제인패밀리인스티튜트 연구원

④“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각에선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 지표를 보고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오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콩 가격 급등으로 시작된 1970년대의 물가 급등은 1·2차 오일 쇼크와 더불어 달러화 가치 폭락 등으로 연결됐고, 물가가 수년 넘게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했다. 당시 연준이 금리를 20%까지 올려 간신히 물가를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고꾸라져 경기가 회복되는 데 또 수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현재의 원자재값 급등과 공급망 문제 등이 1970년대의 데자뷔(déjà vu·이미 본 듯한 현상)라, 이 상황에서 경제 성장 속도마저 떨어지면 스태그플래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이런 주장을 여러 차례 부인하고 있다. 랜들 퀄스 연준 부의장은 지난달 말 한 강연에서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축했다. 상당수 전문가도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본다. 호아킨 펠즈 핌코 상무는 “1970년대와 달리 생산성이 조금씩 오르는 추세인 데다, 지금은 당시처럼 강성 노조가 없어 임금 급등 가능성도 희박하기에 두 시기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클라우디아 삼 제인패밀리인스티튜트 연구원 역시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의 미국 경제는 해외 원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 않은 데다, 많은 기업의 이익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서비스 부문의 성장도 빨라지고 있어 향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울 요소”라고 말했다.

☞완전고용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 자발적인 실업자만 있는 상태다. 일할 의지를 가진 사람이 모두 직업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적 수치 기준은 없지만, 한국과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3~4% 안팎이면 완전 고용 상태에 이르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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