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재활용은 요즘 전 세계 제조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과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데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나 파괴 여부를 소비자들이 더 철저하게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플, 나이키, 벤츠 등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가 제품 제작 과정에서 재활용품을 쓰고 자원 낭비를 줄이는 점을 강조한다. 이 중 일부 기업은 시류에 편승, 비주력 제품에 소량의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눈속임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재활용품 활용이 향후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할 장기 트렌드로 보고 관련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업들도 많다.
◇분해부터 재가공까지 촘촘하게
애플은 자사 제품에 100% 재활용 알루미늄을 사용한다고 자주 강조한다.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와 전자 회로에 쓰이는 여러 가지 희귀 금속류도 재활용 대상이다. 애플은 이를 위해 특별한 ‘분해 로봇’을 개발했다. 데이지(Daisy)라는 이름의 로봇으로, 폐기된 아이폰에서 배터리와 카메라, 나사, 회로판 등을 부품별로 분류해내고, 이 과정에서 알루미늄과 니켈, 구리, 코발트, 텅스텐 같은 값비싼 금속을 구분해 낸다. 세밀한 부품까지 추출해 내는 애플의 로봇 기술은 매년 진화, 지금은 1시간에 약 200대의 아이폰을 분해해 재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 로봇들이 각각의 부품을 성공적으로 분해하는 확률은 97% 정도다. 애플은 “아이폰 10만개당 금(金) 2파운드(약 0.9㎏), 은(銀) 16.5 파운드(약 7.5㎏), 알루미늄 2t을 추출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활용 공정에서 추출해 낸 알루미늄을 새 제품처럼 재가공하는 것도 애플만의 노하우다. 애플은 이 기술에 대한 특허도 냈다. 재활용으로 얻은 알루미늄에는 불순물이 많다. 이를 녹여 다시 알루미늄 합금을 만들면 알루미늄 특유의 환한 금속 색이 아닌, 짙은 회색빛을 띠는 경우가 많다. 애플은 이를 좀 더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철과 실리콘, 망간 등을 적절한 배율로 섞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애플은 특허장에 “전체 질량에서 철이 최소 0.1%, 마그네슘 0.45%, 망간 0.09%, 기타 비알루미늄 재료 3%를 섞는다”고 밝혔다. 이렇게 적절한 배율로 알루미늄 합금을 만든 후, 표면에 남아있는 산화물(酸化物)과 찌꺼기를 화학 약품 등으로 제거하면 새것 같은 ‘재활용 알루미늄’을 얻을 수 있다.
◇헌 옷 재활용 기술에 5년 투자
IT(정보기술) 업계 못지않게 재활용 마케팅이 활발한 산업이 패션 업계다. 한 철 유행에 맞게 싸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옷이 급증, 자원 낭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 대부분의 의류 회사들이 의류 제작에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가 ‘페트병으로 만든 옷’ 등 재활용 소재를 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일부 회사들은 주력 제품 자체를 끊임없이 재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른바 ‘의류의 순환 경제’ 모델이다.
일본 의류 회사 유니클로는 화학회사 도레이와 제휴해 기존 자사 의류의 재료를 새 제품에 다시 쓰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오리털 ‘다운 재킷’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니클로가 헌 옷을 회수해 도레이의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면, 컨베이어 벨트를 거치면서 절단된 옷이 원심력과 바람의 힘으로 옷감과 오리털로 분리된다. 도레이는 이 중 상태가 좋은 솜털과 깃털만 모아 특수 세척 과정을 통해 불순물과 유지(油脂)를 제거, 새것처럼 재생해낸다.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심해 이 재활용 기술을 완성하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
◇스타트업과 재활용 기술 제휴
자동차 업계도 재활용 소재 활용에 적극적이다. 직접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스타트업과 제휴해 재활용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 타이어는 폐타이어 재활용 기술을 가진 스웨덴 기업 엔바이로와 제휴를 맺고 재활용 타이어 공장 건설에 3000만달러(약 332억원)를 투자했다. 엔바이로는 폐타이어에서 카본 블랙(고무 제품의 강도를 높이는 배합제), 경유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열분해 오일, 철 등을 추출하는 기술을 최근 개발했다. 재활용 기술로 얻어진 소재 중 90%는 타이어와 컨베이어 벨트, 진동 방지 부품 같은 고무 제품으로, 나머지 10%는 공장에서 쓸 열과 전력을 만드는 원료로 직접 사용할 예정이다.
기아자동차는 SK이노베이션과 손잡고 폐배터리를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재활용하거나, 배터리의 양극재에 쓰이는 리튬·니켈·코발트 등의 값비싼 금속을 회수해 다시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전기 자동차 배터리는 여러 개의 배터리 모듈(module)로 구성되어 있고, 이 모듈은 또 수십 개의 배터리 셀(cell)로 구성된다. 우선 배터리 성능 평가를 통해 아직 쓸 만한 모듈과 셀을 골라 내 재가공을 거쳐 ESS로 재사용한다. ESS용으로 쓸 수 없는 배터리 모듈과 셀은 SK이노베이션이 값비싼 금속 소재를 추출,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재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