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미국 최대 유전 개발·운영 기업 핼리버튼(Halliburton)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CEO(최고경영자)의 지난해 연봉이 적절한지 묻는 ‘주주권고투표(Say on Pay)’에서 53%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 회사 제프 밀러 CEO의 지난해 연봉은 2230만달러(약 249억910만원)로, 전년(1280만달러) 대비 74.2%(950만달러) 늘어났다. 주주들은 “회사 매출이 전년보다 36% 감소한 144억달러(약 16조원)에 그쳤고, 영업 손실액이 24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했는데도 CEO는 연봉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분노했다. “회사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1년간 직원 수천 명을 해고해 놓고, 정작 자기 연봉은 올린 것이다.
비단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적과 주가는 부진한데도 자신들의 연봉은 올린 대기업 경영진이 주주와 직원의 비난을 받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S&P500에 속한 500개 대기업 중 13곳의 주주권고투표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한국에서도 임원과 직원 간의 연봉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사내 갈등이 고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주 불만 사상 최고치
미국의 주주권고투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사의 재무구조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도입했다. ‘권고’인 만큼 중 연봉을 회수하거나 새로 설정하는 강제력은 없다. 하지만 다음 해 경영진의 연봉 수준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주주권고투표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았던 13사 중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이라는 인텔, 전 세계 1위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스타벅스도 있다. 올 2월 새롭게 취임한 팻 겔싱어 인텔 신임 CEO는 1년간 총 640만달러(약 71억원)의 보수를 받기로 했다가, 주주 61%의 반대에 직면했다. 반도체 시장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상황에서 아직 구체적인 실적이 없는 신임 CEO의 연봉이 크게 오른 것을 불편해한 주주가 많았다. 전임자인 밥 스완(Swan)은 지난해 200만달러대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의 지난해 연봉 1470만달러(163억원)에 대해서도 주주 52.5%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지난해에는 84.5%의 주주가 찬성 의사를 냈었다. 모건스탠리는 “존슨 CEO가 최근 몇 년간 두 차례 특별 상여금을 받았고, 50만달러에 달한 상여금이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순매출이 전년 대비 27.7% 감소한 191억6000만달러(21조3000억원)에 그쳤다.
미국 재계는 실적 발표가 계속 이어지는 앞으로 몇 주간 비슷한 사례가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P500에 속한 상장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연달아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ISS 코퍼레이트 설루션의 브라이언 존슨 전무는 “(S&P500 속한 기업 중) 200개 이상 기업의 주주총회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임원과 직원 간 연봉 격차 커져
한국에는 주주권고투표 같은 제도가 없다. 주총에 주요 임원의 보수(연봉) 한도와 지급을 결정하는 안건이 올라오지만, 부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상 임원 연봉에 대한 견제가 없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임원 연봉은 늘고, 직원 연봉은 줄거나 동결돼 연봉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며 내부 불만이 쌓이고 있다.
호텔신라의 경우 지난해 직원들의 1인당 평균 급여가 5000만원으로 전년(5900만원) 대비 15.2% 줄어들었다. 매출이 3조1881억원으로 전년 대비 44.2% 줄어들었고, 영업손실은 1852억원에 달하면서 신종 코로나 사태로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하지만 임원들의 연봉은 코로나 사태 전보다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타격이 컸던 면세점 사업을 총괄한 한인규 사장의 총보수는 24억9100만원으로, 전년(17억9900만원) 대비 38.4% 올랐다. 이런 와중에 호텔신라 노사가 지난 3월 “전 직원 고통 분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며 올해 임금을 동결에 합의하자, “직원들만 고통 분담하라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유통 대기업 신세계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20년 영업이익(884억8300만원)이 전년 대비 81% 급락할 정도로 부진해진 상황에서 임직원 간 연봉 격차가 더 커졌다. 지난해 직원들의 1인당 평균 연봉은 5900만원으로 1년 전과 같은 수준이었지만, 등기이사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2억4900만원으로 전년(10억3400만원) 대비 20.7% 올랐고, 미등기임원의 1인당 평균 보수 역시 5억6300만원으로 전년(5억6100만원) 대비 소폭 올랐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94개 기업 임직원의 작년 급여를 전수조사해 보니, 2020년 미등기임원과 등기이사의 평균 연봉은 각각 평균 3억5890만원, 8억7010만원으로 직원 평균 연봉 대비 각각 4.4배와 10.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의 4.3배와 10.3배보다 더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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