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 꾸준히 투자해 온 회사원 윤모(31)씨는 지난 10일 보유 중이던 ‘아크 이노베이션(ARKK) ETF(상장지수펀드)’를 전량 처분했다. 이 ETF는 테슬라 등 미래가 기대되는 중소형 기술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상품으로, 지난 한 해 171% 급등해 한국 투자자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올 들어 금리 인상 우려가 불거지자 고점 대비 33% 이상 하락하며 후발 투자자는 오히려 손실을 봤다. 윤씨 역시 원금의 약 24%를 잃었다. 그가 남은 300여만원으로 투자한 상품은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SPDR S&P500(SPY)’이다. 윤씨는 “더는 주가 하락을 버틸 자신이 없어 과감하게 ARKK를 손절(손해를 보고 매도)했다”며 “우량주 중심의 S&P500 지수는 장기적으로 오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지난 한 해 미국 기술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이른바 ‘서학 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는 성장주 투자에서 주가 등락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지수 추종 ETF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가 바뀌는 중이다. 미국 증시의 변동성에 지친 서학 개미들의 ‘미국 증시 이탈’ 움직임도 보인다. 요동치는 증시 마냥 서학 개미의 입맛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제2의 테슬라 찾다 실패

서학 개미들은 작년 한 해 테슬라에 30억달러(약 3조3921억원)를 투자해 큰 수익을 냈다. 지난해 테슬라 주가 상승률은 700%에 달한다. 성장주의 달콤함을 맛본 이들은 올 들어 더 과감해졌다. ‘제2의 테슬라’를 꿈꾸며 중소형 기술주를 쓸어 담았고, 스타 펀드 매니저 캐시 우드가 운용하는 ETF ‘ARKK’가 대표적 투자처가 됐다. 서학 개미들은 ARKK뿐만 아니라 ARKK가 담고 있는 종목도 대거 사들였다. 지난 1~2월 ARKK 순매수액은 3억달러(약 3400억원)에 달했고, 테슬라와 팔란티어, 유니티소프트웨어 등 ARKK의 투자 종목들이 지난 2월 해외 주식 순매수 1~3위를 휩쓸었다.

서학 개미들은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하는 스팩(SPAC·기업 인수 목적 회사) 투자에도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당시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에 불과했던 ‘처칠캐피털IV(CCIV)’ 주식을 지난 1~2월 2억3800만 달러(약 2692억)나 사들였다. 테슬라 대항마로 꼽히는 전기차 회사 ‘루시드모터스’와 합병한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이 전략은 2월 중순부터 역효과를 일으켰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폭등하며 금리 인상 우려가 고조되자 중소형 성장주와 스팩 주가가 급락했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가치가 주가에 반영되는 성장주의 매력이 떨어진다. CCIV 주가는 2월 고점 대비 67%나 하락했고, ARKK 역시 33% 떨어졌다.

◇2분기 들어 ‘안정 지향’ 변신

중소형주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서학 개미들은 이를 만회하려 지난 3월 ‘3배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상품으로 눈을 돌렸다. 이 상품들은 지수가 1% 오르면 3배 수익을 얻고, 1% 내리면 3배 손실을 보는 초(超)고위험 상품이다. 대형 기술주 지수를 추종하는 ‘마이크로섹터 FANG+ 인덱스 3배 레버리지 ETN(FNGU)’과 반도체 지수를 좇는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SOXL)’가 대표적이다.

이 두 상품은 3월 한 달간 미국 주식 순매수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4월 미국 기업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좋은 실적이 기대되는 대형 기술주와 반도체 업종에 베팅한 것이다. 두 상품은 크게는 하루 15~17%씩 등락을 거듭했다. 결국 3월 한 달간 FNGU는 17%, SOXL은 1.3% 주가가 내렸다. 비교적 일찍 투자한 서학 개미들은 2월의 손실을 만회했지만, 늦게 들어간 투자자들은 오히려 손실만 더 늘었다.

서학 개미들은 4월 들어 투자 방식을 다시 바꿨다. S&P500 지수에 따라 주가가 변하는 ETF인 SPY가 순매수액 1억1610만달러(약 1313억원)를 기록하며 지난달 미국 주식 순매수 2위에 올랐다. 안정 지향적 투자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해 서학 개미 열풍이 시작된 뒤 SPY가 월별 순매수 5위 이내에 든 건 처음이다. SPY는 올 들어 9% 오르며 안정적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개미들, 미국 주식 떠나나

서학 개미들이 미국 증시에서 대거 이탈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투자액은 지난 2월 468억달러(약 53조원)로 정점을 찍은 뒤 3월(399억)과 4월(243억) 두 달 연속 줄어들었다. 이달 초 미국 주식 투자를 모두 정리한 백모(37)씨는 “높은 세금과 시차에도 미국 주식에 투자했던 건 안정적 수익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데, 올해 내내 변동성이 너무 심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당분간 미국 증시의 변동성 증폭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예측보다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투자하라는 조언들이 나온다. 장효선 삼성증권 글로벌주식팀장은 “실적 대비 낙폭이 과대한 빅테크와 소비 재개 관련주, 인플레이션 수혜주 등으로 철저한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은 “인플레이션 이슈가 계속되는 한 성장주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개별 회사의 실적보다 거시 경제 환경의 변화에 주목해 투자 방향을 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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