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수만 명, 시가총액이 수조원을 넘는 일류 기업도 회사 조직과 경영진이 ‘상식적 판단’을 못하는 지경에 처하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 마르틴 린드스트롬(Lindstrøm)은 “수도 없이 많은 기업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조직 논리에 매몰된 오판, 눈앞의 이득에 현혹된 리스크 회피가 큰 실패를 부를 수도 있고, 장기간 누적된 비상식적 선택들이 끝내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 상황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의 길을 거스르는 순간,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국내외 기업의 몇몇 대표적 사례를 살펴봤다.

LG전자의 첫 번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싸이언 안드로-1’(왼쪽)은 애플 아이폰보다 2년 5개월 늦은 2009년 11월에 나왔다. 상식이나 다름없는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애써 무시한 결과였다.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2017년 4월 시카고발 켄터키 루이빌행 항공기에서 승객 데이비드 다오(Dao·가운데)를 억지로 끌어냈다가 주가 하락으로 10억달러 가까운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손해를 봤다. 자사 요구르트가 신종 코로나에 효능이 있다는 남양유업의 주장은 ‘신종 코로나 공포’를 악용한 몰상식 마케팅이란 비난을 받았고, 결국 홍원식 회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조선 DB·유튜브 캡처·남강호 기자

◇‘선점의 힘’ 무시한 대가

LG전자는 지난달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1995년 7월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지 26년 만이다. 그동안 회사의 스마트폰 관련 사업 부문 실적은 5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영업 적자였다. 스마트폰 산업이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긴 대가란 지적이 나온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신산업실장은 “빠른 시장 진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IT(정보기술) 산업의 기본 상식”이라고 했다.

신(新)시장은 일찍 진입할수록 기술 우위를 갖고, 유통망과 충성 고객 확보도 쉽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선점 우위 효과(first-mover advantage)’다. IT 제품과 서비스는 기존 이용자가 또 다른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네트워크 효과’까지 발휘돼 선점 우위 효과의 강도가 더 세다.

LG전자는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2007년 6월 이후에도 계속 피처폰 사업에 머물렀다. 당시 LG전자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 순위는 세계 3위였다. 당시 피처폰 사업부가 스마트폰 사업 강화를 원치 않았고, 최고 경영진마저 “기다리며 지켜보라(wait and see)”라는 해외 컨설팅 업체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삼성전자 역시 첫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선점 기업을 빠르게 추격해가는) 다음 단계는 놓치지 않았다”며 “LG전자는 항상 뒤에서 쫓다 트렌드가 바뀐 후에만 반응했다”고 평가했다.

◇현장부터 임원까지 ‘상식 파괴’

2017년 4월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의 승객 강제 퇴거 사건은 ‘총체적 상식 파괴’의 교과서 같은 사례다. 이 항공사는 당시 자사 승무원을 태워야 한다는 이유로 시카고발 루이빌행 항공기에서 초과 예약(오버부킹)이 된 손님 4명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이 과정에서 내리기를 거부하는 베트남계 미국인 의사가 상처를 입었다. 그가 피투성이 얼굴로 쫓겨나는 영상은 인터넷상에서 공유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가 됐다. 당시 항공 업계에선 “기내 탑승 전에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며 보상책을 제시, 승낙을 얻어내는 게 상식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항공사 지시대로 승객을 끌고 나간 보안 요원들은 이후 해고당했다. 현장에서 승객을 상식적으로 대하지 않은 것이 인정된 셈이다.

이후 대응도 비상식적이었다. 당시 이 항공사 CEO(최고경영자) 오스카 무노즈(Oscar Munoz)는 사태 초반 “그 승객이 호전적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여행객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유나이티드항공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확산했다. 유명인들의 보이콧까지 이어지며 유나이티드항공의 주가는 급락했다. 무노즈 CEO가 사흘 만에 뒤늦은 사과를 했을 때는 이 회사 시가총액이 10억달러 가까이 증발했고, 회사의 평판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국내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기업 이미지는 법률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라며 “우선 사태 수습과 개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홍보의 ‘상식’을 무시한 대가를 제대로 치른 것”이라고 했다.

◇과학 빙자한 沒상식 홍보 참사

남양유업이 지난달 자사 발효유 불가리스가 “실험 결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던 사건은 비(非)상식을 넘어 몰(沒)상식이 초래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란 평가를 받는다. 당시 남양유업은 세포 배양 배지에 불가리스를 투여했더니 독감 바이러스의 활동량이 99.9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77.78% 억제된다고 발표를 했다. 이 내용은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되면서 불가리스가 매진되고, 남양유업 주가가 급등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곧바로 전문가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동물 세포에 불가리스 유산균을 이용해 소독약 테스트하듯 실험했을 뿐이고, 인체 내에 들어갔을 때의 실제 항(抗)바이러스 효과는 알 수 없는 부실한 연구란 것이다. 게다가 연구를 기획하고 지원한 주체가 남양유업이란 말이 나왔다. 상식적으로 이런 연구가 객관성을 인정받기는 힘들다.

결국 “신종 코로나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이용한 마케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홍보를 노린 허위·과장 광고라며 고발까지 당했다. 주가는 다시 급락했고 경찰 압수수색도 이뤄졌다. 지난 4일엔 홍원식 회장이 눈물의 사과문과 함께 사퇴했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 이후 이어지던 불매운동은 더 거세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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