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의 주가가 역대 최고점(157달러)을 경신했다. 지난 1분기에 회사 역사상 최대 순익을 기록한 덕분이다. 같은 시기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골드만삭스와 웰스파고 등도 순익이 지난해보다 2~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덕분에 미국 주요 금융주들의 주가는 드디어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전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일러스트=김성규

금융주 투자자들은 간만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지난해 역대급 활황장에도 금융주만큼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그러나 최근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은행들이 거의 모든 사업 부문에서 ‘어마어마한 위협(enormous threats)’에 직면했다”고 적었다. 그는 “지금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심지어 월마트까지도 경쟁 상대”라며 “경쟁 강도와 위협은 앞으로 더 무시무시해질 것(formidable)”이라고도 했다. 역대 최고 실적이라는 희소식 뒤에 전통 금융업의 몰락을 알리는 음울한 경고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예금만 늘고 대출은 줄어

미국 금융 회사들이 깜짝 실적을 낼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코로나 기저 효과’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주요 은행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부실 채권 급증을 우려, 막대한 충당금을 쌓았다. 작년 말 기준 미국 전체 은행의 충당금 적립액은 2019년 말보다 2배가량 늘어난 2366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예상보다 부실 채권 규모가 크지 않았다. 정부 재정 확대와 중앙은행의 돈 풀기 덕분이었다. 그래서 1년 전 적립한 충당금을 이익금으로 돌렸고, 덕분에 순익이 급증했다.

주식 시장 활황으로 투자 금융쪽 이익도 대폭 늘어났다. 결국 1회성 요인으로 인한 ‘반짝 실적’에 불과했던 셈이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가 “1분기 실적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은행들의 본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주(主) 수익원인 예대마진(대출 이자 수익과 예금 이자의 차이)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업무가 주축인 웰스파고의 경우 올 1분기 매출 대비 이자 수익 비율이 201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융 업계에선 “은행들이 ‘일본화 현상’을 겪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 성장이 저조해 대출 수요는 줄어드는데, 돈이 갈 곳을 잃어 예금은 늘어나는 현상이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은행, 웰스파고 등 4대 은행의 예대 비율(예금액 대비 대출금의 비율)은 작년 초 70% 안팎에서 올해 1분기 50%대로 떨어졌다. 미국 은행 상위 25곳의 최근 대출 잔액은 작년보다 8% 줄어들었다. 제라드 캐시디 RBC 연구원은 “지금 같은 추세로 예금이 늘고 대출이 줄면 상당수 시중은행이 2022년에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핀테크 기업에 이미 뒤처져”

‘본업'이 타격을 받은 해외 대형 은행들은 부랴부랴 변화를 모색 중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까진 투자은행과 시중은행의 모두 하는 이른바 ‘유니버설 뱅킹’이 대세였고, 다른 비슷한 은행을 집어삼켜 하루라도 더 빨리 덩치를 불린 이른바 ‘메가 뱅크'가 승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과 집중’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주 소비자층을 부유층과 기업으로 좁히는 한편, 은행 합병보다는 사업부 매각 등 덩치를 줄이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미국 씨티그룹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한국을 포함해 중국, 호주 등 13국에서 소비자 금융 업무를 접기로 했다. 현재 부분 매각, 청산 등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HSBC도 최근 프랑스 내 시중은행 매각을 추진 중이다. 미국 웰스파고는 미국 내 지점 수 축소와 함께 비핵심 사업 구조 조정에 나섰다. RBS, 바클레이즈 등 영국계 은행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을 비롯한 중소형 국가에서 철수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은행 지점의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점도 은행의 변화를 부르는 주된 요인이다. 은행 업무, 결제, 환전, 송금 등 개별 금융 업무 수요가 핀테크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 고객층을 이 기술 기업들에게 조금씩 빼앗기자, 개발자 채용과 인수합병 등으로 디지털 뱅킹을 강화하려는 추세도 더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주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은행·금융주는 전통적인 ‘경기순환주'로, 경기 사이클에 따라 주가가 출렁였다. 경기 회복기에 이자 수입이 늘어나고, 반대로 경기 침체기엔 이자 수입이 줄어드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본업 자체가 흔들리면서 은행들도 경기와 상관없이 생존 능력에 따라 옥석(玉石)이 가려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연구원은 “최근 몇 년간 이른바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들을 완전히 제쳤다(trounced)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스퀘어 등 주요 핀테크 기업의 시가총액은 골드만삭스를 넘은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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