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2040년,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대신 중국의 베이더우(北斗)가 쓰일 것이다.”

최근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한 ‘글로벌 트렌드 2040’ 보고서 내용 일부다.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는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만들어 4년에 한 번씩 백악관에 제출하는 전망 보고서다. 미국 외교와 안보, 경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올해 보고서가 중점적으로 제기한 것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이슈였다. 이 중 하나가 GPS로 대표되는 인공위성 기반 위치정보시스템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미국 국방부가 1970년대부터 구축해온 GPS가 사실상의 기술 표준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판 GPS인 베이더우 구축에 뛰어들었고, 사업 착수 20여 년 만인 지난해 6월 시스템 운영에 들어가면서 미국과 중국 간 ‘GPS 경쟁’이 시작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술 리더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민감한 위치정보마저 중국에 통째로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다.

◇'일대일로' 따라 확산하는 베이더우

베이더우는 실제로 서비스 시작 1년도 되지 않아 전 세계 곳곳에서 GPS의 위상에 맹렬하게 도전하고 있다. 미국 기술 컨설팅 기업 트림블은 “지난해 말 전 세계 195국 수도 중 85%인 165국의 수도에서 GPS보다 베이더우의 신호가 더 많이 잡혔다”고 밝혔다. 전 세계 주요국에서 GPS 대신 베이더우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커졌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활발한 라오스,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등의 지역에서는 이미 베이더우가 GPS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GPS보다 베이더우를 활용하는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도 올해부터는 GPS보다 베이더우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된다. 중국 정부가 이달 초 화웨이를 비롯해 오포와 비보, 샤오미 등 주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베이더우 사용을 승인하면서다. 애플마저 올해 ‘아이폰 12’에 베이더우 서비스를 넣었다.

중국 정부는 베이더우 홍보 캠페인에도 열심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이 베이더우의 우수성을 연일 강조하는 기사를 내고 있고, 중국 소셜 미디어에서는 ‘애국 네티즌’들이 “베이더우를 쓰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니다!(不支持北斗導航不愛國)”라고 부르짖고 있다. 내년쯤이면 대부분의 중국인이 GPS 대신 베이더우를 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지방 정부는 베이더우를 낙석(落石) 등 재난 예측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의 칭허(淸河)현은 지난해 10월 지역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베이더우 기반의 위성 방목 시스템도 도입했다. 소의 귀에 위치 확인 칩을 장착해 스마트폰으로 소의 위치뿐만 아니라 소가 어디에서 어떤 풀을 먹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정부에 위치 파악 당할 위험”

중국 정부는 GPS보다 베이더우가 더 정교한 위치 확인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중국과학원 우주과학센터연구진은 이달 초 발표한 한 보고서에서 “비행 물체에 베이더우를 설치해 운영한 결과 고도 2000㎞ 이하에서는 GPS보다 50% 더 많이 위치 정보를 측정할 수 있고, 또 오차 범위도 3㎝ 이내로 (GPS보다) 훨씬 낮았다”고 주장했다.

민간용 GPS의 오차 범위는 20m 이내로 알려졌다. 이것만으로도 차량 길안내(내비게이션)나 지도 앱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등장할 자율주행차나 무인 비행기, 드론 등 미래형 이동 수단을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수㎝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위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이 분야에서 기술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성항법시스템의 정교함을 높이는 요소 중 핵심은 인공위성의 수다. GPS와 베이더우 모두 삼각측량의 원리를 이용하므로 최소 3~4기의 위성이 필요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위치 정보를 받으려면 최소한 24개가 필요하다. 인공위성 수를 늘릴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이 점에서 후발 주자인 베이더우는 미국의 GPS를 한 발 앞섰다. 3월 말 기준 베이더우의 가동 인공위성은 42개이고, GPS의 가동 인공위성은 29개다. GPS 운영사 스피렌트의 앨리슨 브라운 CEO(최고경영자)는 “베이더우의 사용 주파수가 GPS보다 많은 점도 (각종 방해물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줘) 강점”이라고 했다.

한국도 학계와 일부 기관에서 GPS와 베이더우를 혼용해 사용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화웨이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문제처럼 보안 문제가 불거져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성이 위치 확인 전파를 쏘기만 하는 GPS와 달리, 베이더우는 위성과 스마트폰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를 악용해 중국 정부가 단말기에 스파이웨어를 몰래 심을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정부가 특정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만 정부는 이 때문에 베이더우 사용을 금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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