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전 세계 개인 투자자의 최고 관심사는 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주가였다. 쇠락해가는 오프라인 게임 유통업체였던 이 회사 주식은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한 주식 투자자 모임에서 시작된 집단 매수 공세로 운명이 바뀌었다. 18달러였던 주가가 3주 만에 483달러까지 치솟았고, 이 회사 주식을 공매도하던 상당수 헤지펀드에 1000억달러(약 110조원)에 육박하는 손실을 입혔다.

이 투전판을 두고 ‘공매도 대전’ ‘개미들의 반격’ 등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 세력에 역전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9일 게임스톱 주가는 50달러대로 곤두박질쳤고, 최근엔 소셜미디어를 통한 주가 띄우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결과만 놓고 보면 개미들의 ‘대첩’보다 ‘어부지리’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개미 투자자와 헤지펀드는 대부분 손실을 봤고, 숨죽이며 대량 지분을 보유 중이던 기관 투자자와 내부자들은 예상치 못한 ‘돈벼락’을 맞았다.

◇돈벼락 맞은 기관 투자자들

게임스톱 사태에서 가장 큰 이득을 거둔 투자자는 기관 투자자였다. 우선 게임스톱의 최대 주주였던 투자 운용사 피델리티가 대박을 냈다. 피델리티는 이 회사의 유명 펀드 매니저 조엘 틸링거스트의 주도로 지난해 말 주당 20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에 게임스톱 주식 930만주(전체 주식의 13%)를 사들였고, 1월 말 주가가 300달러 이상으로 치솟자 단 87주만 남긴 채 모든 주식을 팔아치웠다. 로이터에 따르면, 추정 이득만 약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달한다.

틸링거스트가 주가 급등을 예견한 것은 아니라고 알려졌다. 그는 테크주 광풍 속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게임스톱이 외면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 회사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외면받던 업종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던 가치 투자자의 전형적 순환 매매 전략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개인 투자자들이 예상치 못하게 주가를 띄워 준 덕분에 그가 운영하는 펀드 수익률이 2%포인트나 높아졌다”고 전했다.

게임스톱의 6대 주주였던 센베스트매니지먼트도 약 7억달러(약 7717억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주가가 20달러 언저리였을 무렵 게임스톱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공매도 공격을 거드는 “Gamestonk!!(게임 맹폭격!!)”이란 트윗을 날린 1월 26일 이후 주당 200~300달러 사이에 주식을 팔아치웠다.

게임스톱 경영진과 내부자들도 이득을 봤다. 조지 셔먼 CEO의 스톡옵션 가치는 7억달러까지, 제임스 벨 CFO(최고재무책임자)의 스톡옵션은 1억7000만달러(1874억원)까지 올랐다. 이 중 일부 경영진은 보유한 스톡옵션을 30~40달러대에서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스톱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다 보니 200~300달러까지 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임스톱은 주가 급등을 이용해 자본 확충도 시도했다. 당시 게임스톱의 부채 규모는 2억달러(약 2205억원)에 달했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말 1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금융 당국에 제출해 놓은 터였는데, 주가 급등으로 더 많은 돈을 끌어모을 천재일우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금융 당국이 “유상증자를 하려면 4분기(11~1월) 재무상태표의 구체적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돌연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

◇사주 일가와 경영진도 ‘대박’

반대로 개미 투자자들이 대박을 낸 사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로빈후드 등 주식 매매 서비스의 거래 중단으로 큰 손실을 봤다는 투자자들의 고소는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게임스톱 주식을 끌어올린 개인 투자자들의 ‘반(反)공매도’ 움직임은 미국 위스콘신주의 헤드폰 제조 회사인 코스(Koss)로 이어졌다. 코스는 1953년 TV 대여 회사로 설립돼 현재 창업자 일가가 전체 지분 80%를 보유하는 전형적 미국 지방 제조업체다.

코스의 주식은 개미 투자자들이 몰리기 직전인 지난달 22일까지만 해도 주당 3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이라는 트위터 이용자 @realwillmeade가 “공매도 물량이 많다”며 코스 주식 매수를 추천하자, 주가가 오르기 시작, 일주일 만인 지난달 29일 장중 127.4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창업주 일가였다. 마이클 코스 CEO는 3만6000주를 96만달러(약 11억원)에, 그의 아들 존 코스는 1만5000주를 37만달러(약 4억원)에, 창업주 아내 명의의 신탁 계좌도 10만주를 350만달러(약 38억원)에 팔았다.

이 회사 경영진도 총 1200만달러(약 132억원)어치의 주식을 판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투자자들이 지역 부호에게 더 많은 부(富)를 안겨준 셈이다. 지난 12일 코스의 주가는 14.78달러로 내려앉았고, 제2의 게임스톱을 기대하며 추격 매수에 나선 개인 투자자 상당수가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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