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지난해 12월 22일, 미국 투자 정보 사이트 ‘야후 파이낸스’의 게시판이 개인 투자자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QS’란 종목의 주가가 하루 만에 38.8%나 급등, 131.67달러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QS는 이날까지 한 달 주가 상승률이 500%에 달했다. 지난해 8월 상장 초기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대박’의 꿈에 부풀었다.

QS는 최근 개인 투자자의 인기 투자처로 떠오른 SPAC(스팩)<키워드> 상장의 대표 사례다. QS도 ‘켄싱턴 캐피털 애퀴지션(KCAC)’이란 스팩이 미국의 배터리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QuantumScape)를 인수·합병하면서 탄생했다. KCAC이 QS로 재상장하자, 이 회사의 전고체(全固體) 배터리 기술이 주목받으며 주가가 폭등했다. 당초 KCAC 주식을 공모가(1주당 10달러)에 산 개인 투자자는 4개월여 만에 13배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미 증시 스팩 상장 건수는 248건으로 전체 신규 상장 건수(450건)의 55%에 달했다. 공모 금액도 830억4200만달러(약 91조9400억원)로 사상 최고치였다. 2019년의 59건, 136억달러와 비교해 상장 건수는 4.2배, 공모 금액은 6.1배가 됐다. 광풍(狂風)이라고 할 만한 스팩의 인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채 두 달이 안 되는 기간에 134개 스팩이 등장해 390억달러를 모았다.

◇ 美증시 스팩 상장 1년새 4배 늘어

스팩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교적 낮은 위험으로 큰 수익을 노려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우선 투자한 스팩이 시장 가치가 높은 유망 비상장 회사를 인수⋅합병하면 몇 배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QS 외에도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 모바일 스포츠 베팅 업체 ‘드래프트킹스’, 민간 우주관광 업체 ‘버진갤럭틱’ 등이 대표적 스팩 상장 회사다. 니콜라와 드래프트킹스의 경우, 이들과 합병한 스팩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4~7배가 되면서 스팩 투자 열풍의 도화선이 됐다. 한국에선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의 개발사 선데이토즈가 2013년 말 ‘하나그린스팩’과 합병한 뒤 주가가 5배 이상 올라 화제가 됐다.

반면 초기 투자 위험은 낮은 편이다. 스팩은 주당 공모가가 한국은 2000원, 미국은 10달러 선이다. 1000주를 사도 한국이면 200만원, 미국이면 1만달러(약 1100만원)다. 비교적 적은 종잣돈으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주가가 합병 소식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공모가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SPAC 주식을 너무 비싸게 사지 않았다면, 투자 손실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투자금을 일부 돌려받을 수도 있다. 일정 기간(미국 2년, 한국 3년) 내에 비상장 기업 인수·합병에 실패하면 자동 해산하고, 투자 원금(1주당 공모가 기준)에 약간의 이자를 더해 돈을 돌려준다.

스팩은 지난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폭락하고, IPO(기업공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급부상했다. 미국 CNBC는 “스팩은 과거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기업들의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면서 많은 기업이 스팩 상장을 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 사무실 공유 업체 ‘위워크’와 휴대용 초음파 기기 스타트업 ‘버터플라이 네트워크’,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 ’트웬티스리 앤드 미(23andMe)’ 등이 올해 스팩 상장이 유력한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2019년 스팩(SPAC)과 합병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민간 우주 관광 업체 ‘버진갤럭틱’의 우주 여행선. 이 회사 주식은 최근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해외 주식 중 상위권(16일 기준 8위)에 올랐다. /버진갤럭틱

◇악재로 주가 폭락, 손실 사례도 속출

스팩으로 지나치게 돈이 몰리면서 최근엔 ‘묻지 마 투자’ 우려가 나온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처칠캐피털IV(CCIV)이란 스팩은 최근 테슬라의 대항마로 꼽히는 ‘루시드모터스’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뒤이어 전 세계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인기 종목 상위권(6위)에도 올랐다. 롱뷰 애퀴지션(버터플라이네트워크)과 VG 애퀴지션(23andMe) 등 유력 기업과 합병을 추진 중인 다른 스팩의 주가도 최근 크게 올랐다.

그러나 스팩 투자 역시 일반 주식 투자처럼 추격 매수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있다. 인수·합병 소식으로 스팩 주가가 급등했을 때 비싸게 샀다가, 합병 후 악재로 주가가 폭락하면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최근 이런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6월 스팩 합병을 통해 미 증시에 상장된 니콜라는 상장 직후 공모가(10달러)의 8배인 80달러까지 급등했다가 사기 의혹이 터지면서 금세 20달러 밑으로 추락했고, 최근에는 20달러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QS 역시 132달러까지 갔던 주가가 현재는 44달러대다.

합병 결정이 된 기업의 가치에 따라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기도 한다. 지난 11일 핀테크 업체 머니라이언과 합병을 발표한 스팩 퓨전 애퀴지션(티커: FUSE)은 발표 당일 주가가 11.81달러에서 12.2달러로 3.3% 오르는 데 그쳤고, 다음 날(11.59달러)엔 5% 하락 마감했다.

일부 전문가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스팩의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스팩 시장 붐이 2021년 이후까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개별 스팩의 불확실성을 피하려면 “여러 유망 스팩을 담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조언한다.

☞SPAC(스팩)

‘기업 인수 목적 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영문 약칭. 비상장 기업을 일정 기간(2~3년) 안에 인수·합병(M&A)할 목적으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다. 공모 펀드처럼 일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증시에 상장해 거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