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은 전 세계 관광 산업을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관광입국(觀光立國)’을 외치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썼던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특히 2020 도쿄 하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몰려올 관광객을 기대하고 막대한 투자를 해 온 일본 관광 업계에 암운(暗雲)이 덮쳤다.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路·60) 호시노리조트 대표도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호시노 리조트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고급 리조트 ‘호시노야(星のや)’ 등을 운영한다. 그는 1991년 가업(家業)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호시노 여관’의 4대 사장으로 취임해 호시노 여관을 호시노 리조트 그룹으로 발전시켰다. 온천 한 채로 시작한 호시노 리조트의 숙박시설은 1990년대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 이후 쇠락한 일본 곳곳의 여관을 인수해 부활시키면서 전국 45개로 늘어났다.
호시노 대표는 신종 코로나로 텅 빈 객실들 앞에서 망연자실하지 않고, ‘마이크로 투어리즘(micro-tourism)’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란 집에서 한두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을 말한다. 이 상품이 알려지자 마치 마법처럼 지역 주민 관광객들의 예약이 늘면서 호시노리조트의 예약률은 전년 수준을 회복했다. 호시노 대표는 지난 4일 Mint와 화상 인터뷰에서 “과거 ‘잃어버린 30년’ 동안 그랬듯, 코로나 위기에도 ‘버티면 기회가 온다’는 마음으로 대안을 찾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이후 상황이 어땠나.
“지난 4~5월 호시노리조트의 예약 실적은 전년 동기 10% 수준이었다. 이때부터 ‘18개월 생존 계획’을 세워 직원들과 공유했다. 한마디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자는 거다. 인력은 줄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활에 대비하기로 했다.”
—예약률을 끌어올리려 어떤 노력을 했나.
“일본 관광의 80%가량이 일본 내 여행이다. 6월 첫 주에 수도권 20~70대 2만명을 대상으로 ‘2020년에 여행을 갈 생각이 있느냐’고 설문조사를 했다. 42%가 ‘가겠다’고 했고, 27%가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31%가 ‘고민 중’이라고 답했는데, 시설의 방역 수준이나 밀집도를 가장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리조트 내 철저한 방역 수준을 알리고, 온천 등 시설물의 밀집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을 만들었다. 체크인 시간 등도 조정해 특정 시간에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마이크로 투어리즘’ 상품을 개발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
“기존의 ‘근교 여행’과 비슷하다. 핵심 조건은 개인이나 가족 등 적은 인원이 도보·자전거·자동차 등을 이용해 1~2시간 내외로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 위험을 최대한 줄인 여행이다. 혹시라도 감염 증상이 있으면 집에 바로 돌아오면 된다.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신칸센(초고속 열차)이나 비행기 탑승이 거부돼 집에도 못 오는 신세가 된다. 그 공포 때문에 멀리 가는 게 두렵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신종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마이크로 투어리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근교 여행과는 어떻게 차별화했나?
“해외나 도쿄에서 지방을 찾아온 사람들은 당연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지역의 유명 요리를 먹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역 주민은 이미 먹을 만큼 먹었고, 가볼 만큼 가본 사람들이다. ‘리조트의 꽃’으로 불리는 저녁 식사 메뉴부터 바꿨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하되, 주민들이 흔히 먹을 순 없는 메뉴를 고민했다. 투어 코스도 새로 짰다. 도쿄를 여행하는 도쿄도민을 위해 도쿄 사람도 모르는 도심 노포(老鋪)들을 다수 발굴해 알리는 식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나?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지역을 제외하고 호시노 리조트 산하 시설 대부분이 지난 8월부터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리조트나 온천 여관 대부분 예약률이 100%에 가까워지면서, 9월부터 내년 1월까진 객실 대부분이 만실 상태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일본 정부가 7월부터 시작한 ‘고 투(Go to) 캠페인’과도 맞물리며 좋은 실적을 냈다. 1인 당 숙박비의 35%를 최대 2만엔까지 지원하는 여행 캠페인이다. 이번 겨울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아침엔 인근 오솔길을 산책하고, 밤엔 야외 온천을 즐기는 1인 투어 상품을, 후지산 인근의 ‘호시노야 후지’는 테라스에서 캠핑을 즐기며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 잡은 사슴 고기 샤부샤부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관광을 위해 돈을 지원하는 게 적합하다고 보나.
“캠페인 내용에 전부 동의하진 않는다. 주말·연휴 등 성수기엔 여행 수요가 평일보다 많으므로 지원을 더 할 필요는 없다. 전년 대비 50% 정도 수요를 꾸준히 유지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다.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정부 보조를 활용해 살아남으면 반드시 부활의 시기도 온다. 백신이 보급되면 사람들은 또 길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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