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 질환 정보 서비스 '레어노트'를 운영하는 휴먼스케이프는 지난달 총 1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휴먼스케이프 장민후 대표가 레어노트 서비스를 그림으로 표현한 판자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고운호 기자

희소 질환 맞춤 정보 플랫폼(기반 기술) 서비스 ‘레어노트’를 운영하는 휴먼스케이프는 희소 질환 환자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려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한국의 희소 질환자는 약 70만명(국내 인구의 1.4%)으로 결코 크지 않은 시장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최신 희소 질환 정보와 환자 데이터를 모아 신약 치료제 개발을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초 망막 색소 변성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레어노트는 현재 17가지 질환을 다루고 있다. 레어노트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환자는 2500여 명. 휴먼스케이프는 지난달 한국투자파트너스와 녹십자홀딩스, KB증권 등에서 총 130억원 규모의 후속 투자(시리즈B)를 유치했다. Mint가 만난 이 회사 장민후(31) 대표는 “희소 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료제 정보를 찾지만, 죄다 영어인 데다 외계어 수준의 의학 전문용어라 막막하다”며 “전문 의학 정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주고, 나아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 등도 연계해 더 많은 희소 질환 치료제가 나오도록 도우려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초 희소 질환 ‘데이터 풀’

장 대표는 “희소 질환은 제약사와 환자 양측 모두 ‘난감한 영역’”이라고 했다. 제약사는 법적으로 환자와 직접 접촉할 수 없다. 보통 대학 병원 임상 의사(PI)를 섭외해 임상 시험에 참가할 환자를 모으는데, 오랜 투병 생활에 지친 환자들에게 참가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애초에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제약사도 흔치 않다. 치료제가 절실한 환자로선 속이 탄다.

'레어노트' 앱 화면. 레어노트는 환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최신 의학 소식, 희소 질환 치료제 개발 현황을 일반 환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번역·가공해 전달하는 서비스다. /휴먼스케이프

휴먼스케이프의 레어노트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레어노트는 환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최신 의학 소식, 치료제 개발 현황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가공해 전달한다. 희소 질환 환자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그 대신 희소 질환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증상 등을 수집한 데이터 풀(pool)을 만들고, 이를 제약사와 공유해 치료제 개발을 돕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제약사는 환자 데이터를 쉽게 확보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고, 환자들은 레어노트에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등록해 포인트를 받아 의료 기기나 건강 보조 식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이 포인트는 암호 화폐 흄(HUM)으로 전환해 보유할 수도 있다.

장 대표는 “사업 초기 환자들을 설득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며 “처음 안(眼) 질환 환우회를 찾아갔는데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믿느냐’며 냉대당했다”고 했다. “그때가 하필 비트코인이 폭락하던 2018년 초라서 ‘블록체인으로 데이터를 관리한다’고 하니 사기꾼으로 취급당했죠. 일일이 찾아가 왜 환자 데이터가 치료제 개발에 필수적인지, 나중에 어떻게 치료 기회가 생길 수 있는지 설명한 끝에 1년 만에 환우회 설득에 겨우 성공했어요.”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는 “희소 질환자와 제약사를 연결해 새 희소 질환 치료제가 더 많이 나오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장 대표는 “희소 질환 환자들의 유전자 정보 등 데이터를 모아 제약사의 임상 시험을 돕는 것은 결과적으론 희소 질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환자들의 데이터는 블록체인 기술로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며 임상에 동의하는 환자들의 데이터만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제약사 몇 곳과 데이터 공유를 논의 중”이라며 “내년 초쯤 첫 사례가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요양원 설립 도우며 창업 경험 쌓아

장 대표가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장애가 있는 일곱 살 위 친누나 때문이었다. “나을 수 있는 장애는 아니지만,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죠. ‘5대 병원’은 물론 지방 한의원까지 안 가본 병원이 없어요.” 장 대표는 “그런데 다른 산업군은 IT를 접목하면 천지개벽을 하는데 의료 분야는 20년 넘게 아직도 바뀐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서강대 경영학과) 시절 이미 요양원 설립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 창업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휴전선 근처에 노인 요양원을 세우는 꿈을 가진 실향민 할아버지를 도왔어요. 그분은 돈과 부지·계획만 있었죠. 6개월간 시청 인가, 채용·홍보까지 도맡아 결국 파주에 요양원을 세운 경험이 있습니다.”

휴먼스케이프는 2016년 창업 당시엔 산부인과·성형외과 환자들의 사후 관리 서비스로 시작했다.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니 의료 분야에선 사후 관리보다는 환자 데이터의 가치가 더 높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자료 축적이 가장 절실한 분야인 희소 질환을 선택, 이 영역으로 사업을 발전시켰다. 장 대표는 “정보가 절박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정말 행복하다”며 “의미 있는 사업을 벌이니 생물학·생명공학·유전학 등을 전공한 훌륭한 인재들도 회사로 모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 환자 데이터 플랫폼인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s Like Me)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 /페이션츠라이크미

휴먼스케이프는 레어노트 서비스를 아시아 전체로 퍼뜨리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중증 질병 환자들의 데이터 플랫폼인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sLikeMe)’ 등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레어노트가 유일하다. 현재 17가지인 대상 질환 수도 내년엔 25가지까지 늘릴 계획이다. 장 대표는 “단순 정보뿐 아니라 실제 임상과 연계할 수 있는 질환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며 “앞으로 아시아의 희소 질환자 수억 명에게 우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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