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료 회사 화이트록이 1920년대에 선보인 광고. 금주령 시대인데 산타가 술을 마시고 있다. /화이트록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여러 공휴일 중 ‘색감’이 가장 뚜렷한 날이다. 빨강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의 상징 산타클로스가 빨간 옷을 입어서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흔히 쓰이는 빨간 리본 때문이기도 하다. ‘빨간 산타’는 로고가 새빨강인 코카콜라가 1930년대에 만들어낸 이미지라고 흔히 알려졌다. 하지만 오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탄산 음료 회사 ‘화이트록’이 이미 1920년대에 빨간 산타가 등장하는 광고를 제작해 공개했다. 미국에 금주령(禁酒令)이 내려진 시대인데도, 이 자유분방한 산타는 화이트록 진저에일에 독한 술을 타서 마시고 있다. 옷뿐 아니라 볼과 코도 빨갛다.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소설 중 하나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 주인공 스크루지도 빨강과 연결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극작가 제리 패치의 희곡 버전에선 개과천선한 스크루지가 조카로부터 선물로 받은 빨간 목도리를 목에 걸고 즐거워한다. 흔히 ‘피아노 마후라’라고 불리는 빨갛고 긴 목도리는 ‘따뜻한 겨울’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녀 주인공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처음 만날 때 은수는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다. 따스한 느낌이다.

'크리스마스 캐롤' 연극에서 빨간 목도리를 하고 나온 스크루지 역의 배우. /사우스코스트 레퍼토리

빨강이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뿜을 때는 역시 ‘핏빛’과 연결될 때다. 피(blood)에서 파생한 영어 단어 ‘블러디(bloody)’는 잔혹하고 난폭하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미국에선 빨간 차를 모는 사람이 사고를 많이 내기 때문에 자동차 보험료가 더 비싸다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보험사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명해도 상당수가 사실이라 믿는다. 보험 전문 매체 ‘인슈어닷컴’이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 절반 가까이가 ‘빨간 차 보험료는 비싸다’고 답할 정도로 ‘난폭함’과 ‘빨강’은 잘 분리가 안 되는 모양이다.

주식 투자자들에게 ‘빨강’은 또다른 의미다. 미국은 파랑이 주가 상승, 빨강은 하락을 의미하다. 미국 포커 게임에서 쓰는 칩 중에 파랑이 가장 가치가 높았던 것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1920년대 초에 올리버 긴골드라는 연구원이 포커 게임 칩 색상을 따서 우량주를 ‘블루칩’이라고 일컬었는데, 이후 가치가 높고 건실한 회사의 주식을 그렇게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고 한다. 주식 가격의 오르내림을 나타내는 데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 상승은 푸른 빛으로 그려진다. 반대로 값싼 칩의 색상인 빨강은 ‘하락’이란 뜻으로 쓰인다.

한국은 반대다. 빨간 화살표가 주가 상승, 파랑이 하락을 가리킨다. 한국거래소 공식 블로그에 올라 있는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자국 국기 색상이 빨강이라 이를 긍정적 의미로 쓰고, 중국 또한 빨강을 특권과 부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주가 상승을 빨간색으로 표시한다고 한다. 이런 주변국의 관행을 따라, 한국도 자연스럽게 빨강을 주가 상승에 쓰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회사가 손실이 날 때 서양과 같이 ‘적자(赤字, 중국·일본도 비슷하다. 영어론 보통 ‘in the red’라 한다)’라고 쓸까. 후련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색은 인간이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 중 하나이다. 그래서 직관적이고 명쾌한 의미를 지닐 것 같지만, 경제와 관련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울 듯하다. 통계 분석에선 순수한 무작위 변수를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즉 백색 잡음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경제와 관련해서 색깔을 사용하는 방식은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화이트 노이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긴, 화이트 노이즈가 왜 ‘화이트’인지도 미지수긴 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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