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DR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상장지수펀드(ETF)는 S&P500 지수의 가격과 수익률에 상응하는 투자 결과를 추구합니다. 1993년 1월 시작된 이 상품은 미국에 상장된 최초의 ETF입니다.’
전 세계 최초, 동시에 전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붙는 SPDR S&P500 ETF의 팩트시트 내용이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스파이(SPY)라는 티커(주식 거래 약어), 혹은 스파이더(SPDR) S&P500이란 애칭으로 친숙한 상품이다. 자산 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스(SSGA)가 제공하는 단 몇 줄짜리 설명에서 ETF의 역사적 원형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시장 지수(S&P500)를 그대로 추종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 방식을 따르면서, 펀드와 달리 주식처럼 편리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그렇다. 지금도 운용 자산 총액(AUM) 규모로 줄을 세우면 S&P500이나 나스닥100과 같은 시장 대표 지수를 좇는 지수형 ETF 상품이 최상위를 차지한다. 이른바 ‘천상계’다. 하지만 발밑의 ‘지상계’는 이야기가 다르다. ETF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주식형 ETF도 지수형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 중이다.
◇대표 지수형→섹터형→테마형으로 진화
ETF가 본격적으로 시장의 승기를 잡은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부터다. 국내에 ETF를 도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펀드 매니저들이 직접 투자하고 관리하는 액티브 펀드 상품 수익률이 바닥을 친 데 반해 시장 지수를 따르던 패시브 펀드나 ETF 상품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이때부터 ETF가 본격적으로 시장 대세로 떠올랐다”고 했다.
ETF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장 대표 지수 추종 ETF에서 한 걸음 나아간 섹터형·테마형 ETF 상품도 다양해졌다. ‘섹터형’은 자동차·IT·바이오 등 특정 산업군의 주식을 모아 만든 지수에 수익률이 연동되는 ETF고, ‘테마형’은 ‘청정 에너지'같이 특정 주제 관련주를 모아 만든 지수를 추종하는 ETF다.
섹터형은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과 같이 시장 평가 기관(MSCI·S&P)이 개발한 표준화된 산업 분류 기준을 따른다. SSGA도 GICS의 11개 섹터에 대한 섹터형 ETF 상품을 출시해 운영 중이다. ‘파이낸셜 섹터 SPDR 펀드(XLF)’라면 S&P 파이낸셜 셀렉트 섹터(Financial Select Sector) 지수를 따르는 금융 섹터형 ETF인 식이다. 테마형 ETF는 표준화된 산업 분류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섹터형보다 운신 폭이 넓다. 사회·경제·산업 전반에서 발생할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이와 관련된 지수를 개발해 따른다. 이 때문에 한 테마 안에 여러 업종(섹터)의 기업이 속해 있는 게 대부분이다. 시초는 2005년 3월 인베스코사가 ‘청정 에너지’라는 테마를 내세워 출시한 ‘인베스코 윌더힐 클린 에너지(Invesco WilderHill Clean Energy) ETF(PBW)’로 꼽힌다. 올해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은 ESG를 고려한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ESG ETF에 돈이 몰렸다.
테마형 ETF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규모가 더 늘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테마형 ETF의 AUM은 2019년 약 513억달러(약 56조 196억원)에서 2020년 약 1050억달러(약 114조 6600억원·12월 11일 기준)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장은 “코로나 팬데믹은 세상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하리라는 흐름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중 특종 산업군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며 “비대면·2차전지·전기차와 같이 앞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특정 테마의 ETF를 찾는 투자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시장의 큰 흐름과 방향성은 확신하면서도, 특정 종목을 고르는 덴 어려움을 겪는 투자자들이 테마형 ETF에 몰린다. 재택근무·교육이 늘어나자 클라우드 컴퓨팅 테마형 ETF(퍼스트트러스트 클라우드 컴퓨팅 ETF·SKYY)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반려동물 테마형(프로셰어 펫케어 ETF·PAWZ) ETF를 찾는 식이다. 조 바이든의 미국 대선 승리 직후엔 대마초 관련주를 담은 대마초 테마형 ETF가 주목받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대마초 합법화에 긍정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도 ‘정권 테마형' ETF가 만들어지긴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이 지난 10월 7일 상장한 한국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테마 ETF인 ‘TIGER KRX BBIG K-뉴딜 ETF’는 두 달여 만에 순자산 3000억원을 돌파했다. 이 상품은 문재인 정권이 주도해 한국거래소가 개발한 ‘BBIG K뉴딜 지수’에 뿌리를 둔다.
◇스타 펀드매니저, ‘액티브 ETF’ 만들다
‘지수를 충실히 따라가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ETF는 최근 펀드매니저의 역량이 발휘되는 이른바 ‘액티브 펀드’로도 세분되고 있다. 펀드를 주식처럼 만든 ETF라는 수단은 활용하되, 펀드 운용 방식은 이전 액티브 펀드처럼 펀드 매니저의 재량에 맡기는 방식이다. 올해 미국에서 스타로 떠오른 ARK자산운용의 ARK이노베이션ETF(ARKK)가 액티브ETF의 주력이다. 남성 중심적 투자 업계에서 드문 여성 스타 펀드매니저인 캐서린 우드가 이끄는 ‘아크 인베스트'가 운용하는데 ‘시장을 파괴하는 혁신 기업’에 투자한다는 테마만 제시할 뿐 혁신 기업이나 편입 비율을 정하는 기준은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시장 평가 기관에서 개발해 준 별도 지수도 없다. 수수료는 0.75 %로 SPDR S&P500 ETF(0.09%)보다 훨씬 높다. 사실상 거래가 편리하다는 ETF의 장점만 흡수한 액티브 투자다.
액티브 ETF인 ARKK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연 높은 수익률이다. 올 한 해 수익률(12월 8일 기준)이 141.12%다. 포트폴리오의 약 10%를 차지하는 테슬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둔 덕이다. 이렇다 보니 이 ETF가 담는 주식을 따라서 사는 투자자까지 생겨나고 있다. 김두남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ARKK 같은 액티브 ETF의 등장은 곧 현재 패시브 투자에 쏠려 있는 시장의 무게 추가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며 “패시브 투자 쏠림 현상을 스스로 극복하는 시장 선순환의 일종이라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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