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IT 기업에서 일하며 재택근무 중인 신모(28)씨는 하루 평균 3시간을 회의에 쓴다. 그의 일상 업무엔 팀장과 단둘이 하는 조촐한 팀 회의 그리고 부서장·부문장 보고 회의가 포함되는데, 이게 한 시간씩 진행된다. 때때로 다른 부서와 함께하는 회의도 추가된다. 회의를 하다 오후 업무 시간이 끝날 때도 흔하다. 회의라면 어느 정도 달관한 신씨지만 최근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정각에 시작돼 1시간 단위로 계속되는 ‘화상 회의 이어달리기’ 관성이다. 그는 “2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씩 연달아 세 번 회의하면 화장실 갈 틈이 없을 때도 있다”며 “대면 회의라면 회의실 이동 도중 잠시 화장실에 들르고 회의실로 뛰어가겠는데 상사와 소규모로 하는 화상 회의에선 어렵다”고 했다. 그는 회의 시작 시간을 ‘○시 10′분으로 설정하자고 건의할까 구민 중이다. 딱 떨어지지 않아 보기엔 좋지 않지만, 약간의 변주로 화상 회의 사이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다.

/일러스트=김영석

회의(懷疑)적인 회의(會議)들

회의는 직장 생활의 ‘필요악' 같은 존재다. 협업이 생명인 회사에서 회의 없이 업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회의가 좋다”는 직장인도 별로 없다. 회의에 대한 직장인들의 회의적(懷疑的) 인식을 보여주는 설문조사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7년 기업 문화 개선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째 과제로 ‘회의 문화’를 선정하고 국내 상장사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회의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91.1%가 상명하달, 강압적, 불필요함, 결론 없음 등의 부정적 단어를 골랐다. 자유로움, 창의적 같은 긍정적 단어를 떠올린 응답자는 8.9%에 그쳤다. 회의 만족도 역시 100점 만점에 45점에 그쳤다. 낙제점이다. 참가한 회의 절반 정도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했고, 그 이유로는 ‘단순 업무 점검과 정보 공유 목적이라서(32.9%)’가 가장 많이 꼽혔다. 상사가 발언을 독점한다는 비율도 61.6%에 달했고, 회의 중 31%가량은 잡담이나 스마트폰으로 허비한다고 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회의록 정리를 맡은 막내 사원의 머리도 복잡해진다. 헬스케어 회사에서 일하는 김모(32)씨는 “내부 회의면 요점만 간략히 정리해 요령껏 처리할 수라도 있지 외부 회사와 하는 회의는 나중 책임 소재 때문에 대본 쓰듯이 받아 적어 중노동”이라며 “긴 회의를 정리하고 나면 가끔은 정말 아무 내용이 없어 ‘시간 낭비 했구나’ 싶다”고 했다.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조직 효율성 향상에 목숨을 거는 미국에서도 회의 문화는 골칫거리다. 인사 전문가들은 ‘미국 전역에서 하루 평균 5500만번 회의가 열린다’는 연구 결과(인사 컨설팅사 ‘루시드미팅’ 등)를 자주 인용한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과 재택근무는 회의를 더 늘렸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이 미국·유럽·중동 대도시 16곳 2만1000여 기업 직원 314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이후 회의 횟수는 이전보다 약 13% 늘어났다. 회의 참가자 수는 14명 정도 늘었다. 사무실 내 대화 몇 마디로 끝날 업무가 재택근무 때는 화상 ‘회의’로 바뀐다. 팀원 다수가 모이는 회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생긴 말이 ‘줌 피로(Zoom fatigue)’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 대표 격인 ‘줌’과 ‘피로’의 합성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승혁(35)씨의 얘기다. “참가 인원이 늘어날수록 화상으로 하는 회의라기보단 그냥 상사 혼자만의 연설이나 지시예요. 그런데 시간까지 질질 끈다? 다들 모니터 너머에서 딴짓하고 있지 않을까요. 꼭 필요한 회의도 있지만 아닌 회의도 많으니까 다들 싫어하는 거죠.” 관리자 직급 상사들도 회의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시간만 대충 때우려는 사원들 태도가 ‘결론 없는 회의’를 만든다는 주장이다. 화상 회의로 옮긴 뒤로 답답함도 더 커진다. 잡음 방지를 위해 다들 음소거 기능을 이용하고, 종종 화면을 꺼두는 사원도 많아 그렇다.

회의, 우리 모두가 망친다

회의 문화 개선을 연구하는 매들린 후케 앤트워프 경영대학원 교수는 ‘회의 괴물(meeting monsters)’이란 표현을 쓴다. 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을 △공격적 태도 △잡담 △불평 △딴짓 △침묵으로 분류한 뒤 이를 통틀어 회의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후케 교수는 Mint에 “원래 회의 생산성을 저해하던 팀원은 화상 회의에서도 똑같다”며 “도리어 카메라나 마이크를 끄거나, 기술 문제를 핑계 삼아 딴짓하기에 더 편해졌다”고 했다.

재택근무 시대 회의 괴물을 줄일 획기적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더 나은 회의 문화를 위한 대원칙으로 “회의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점을 강조한다.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적고 짧은 회의로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단 회의 숫자를 억지로 줄이기보다는 효율 높이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효율이 높아지면 회의 감소라는 결과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 조언을 IBM과 P&G의 인사 컨설팅을 맡고 있는 스티븐 로젠버그 노스캐롤라이나 경영대 교수에게 구했다. 로젠버그 교수는 ①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초대하지 말 것 ②회의 시간은 정말 필요한 만큼만 설정할 것 ③회의 주제와 목표하는 결과를 분명히 할 것 ④비디오는 반드시 켜도록 할 것 등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회의가 허례허식에 가까워지고, 회의 시간을 습관적으로 1시간으로 설정하면 40분에 끝낼 일도 1시간 걸린다는 것이다. ‘비디오 켜기'에 대해서는 “각 사원이 회의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조언했는데, 그중엔 “가상 회의 중 침묵의 시간을 받아들이라”는 의외의 것도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무조건 떠들기보단, 회의 도중 각자 아이디어나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 문서에 직접 입력하게 하자는 것이다. 업무 툴 ‘잔디’를 서비스하는 토스랩 김대현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일수록 대면 회의, 전화 등을 통한 대화를 ‘불만 요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화상 회의 외에도 다양한 업무 보조 도구가 생긴 만큼 고정된 틀을 갖춘 주간 업무 보고 회의 등은 공유 문서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채팅 메신저도 활용하면 회의 절대량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돈이 보이는 경제 뉴스 MINT를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MINT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