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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글로벌 대표 가치주 ETF(상장지수펀드)와 성장주 ETF가 각각 받아 든 성적표다. 최근 국내외 증시에는 ‘가치 투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술주가 연일 신고점을 갈아치우는 동안에도 지지부진한 가치주 실적에, 투자자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 100년 간 ‘투자의 정도(正道)’로 여겨진 가치 투자, 이제는 정말 유효하지 않은 전략이 됐을까? ‘가치 투자’의 명가(名家)로 통하는 신영증권에서 자산운용을 책임지는 김창연 이사에게 Mint가 직접 질문했다. 2002년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IT 담당 애널리스트로 입사했던 그는 2006년 신영증권이 ‘가치 투자의 정석을 담겠다’며 선보인 가치투자형 랩(WRAP) 상품의 매니저로 변신, 한국에서 가치 투자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금도 ‘신영 액티브 시매틱 아시아랩’을 통해 최근 1년 간 84.31%(11월 9일 기준)의 수익률을 거뒀다. 그는 “가치 투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아예 ‘가치 투자’라는 표현을 버렸다”면서도 “가치 투자가 옳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치 투자의 시대가 끝났다’고들 한다. 한국 대표 가치 투자자로 손꼽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미리 말해두고 싶다. 우리는 가치라는 표현을 버렸다. 가치주, 가치 투자 이런 표현 대신 요즘 ‘시매틱(thematic·주제, 테마) 투자’라는 단어를 쓴다. 투자 스타일 본질이 바뀐 건 아니고 이름만 바꿨다. 가치 투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때문이다. ‘가치 투자는 성장성은 떨어지더라도 수익이 안정적이고 밸류에이션은 낮은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투자는 이게 아니다. 하지만 가치 투자에 대한 시장의 고정관념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가치 투자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 투자의 바른 정의는 뭔가?
“워런 버핏은 ‘가치 투자라는 표현은 불필요하다(We Think the Very Term ‘Value Investing’ Is Redundant)’고 했다. 투자라는 말 앞에 ‘가치’라는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왜냐? 동어 반복이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 가치 있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게 곧 투자다. 모든 투자는 좋은 회사 주식을 적정 가격에 사는 것이다. 가치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회사를 찾아서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사서 수익을 거두는 게 전부다. 자꾸만 가치 투자 하면 ‘저평가 회사를 산다’거나 ‘기술주는 안 된다’거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 2차 전지 산업이 미래 전망이 밝다고 본다면 해당 업계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미리 가려둔다. 이 기업들 주가가 합리적인 수준이 되길 기다리다 사들이는 것, 이게 사실 (가치) 투자의 본질이다.”
좋은 회사, 어떻게 가려낼 수 있나?
“일단 해당 회사의 비즈니스 분야, 즉 업종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이런 업종을 ‘시매틱’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석탄, 광산 등의 사업은 매력적이지 않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미래 전망이 밝다. 매력적이다. 다만 신재생 에너지 업종의 모든 기업이 다 좋은 회사일 순 없다. 이 업계에서도 실력있는 업체만이 좋은 회사고, 투자 대상이다. 다만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비싸게 사면 안 된다.”
시장에는 이미 굳어진 가치주·성장주의 정의가 있다.
“그렇다. 하지만 가치주와 성장주 구분은 그만하려고 한다. 요즘 누가 ‘중소형 가치주에 관심 있다’ 같은 말을 하나. 그래서 요즘에 ‘가치 투자 죽었나요?’ 물어보면 그냥 나는 ‘죽었다’고 답한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지만 시장이 생각하는 그 ‘가치 투자’는 죽었다는 뜻이다. 아주 전통적인, 저렴한 주식을 사서 오르기만 기다리는 식의 가치 투자는 끝났다. 매출은 안정적이지만 성장성이 떨어지는 회사가 흔히 가치주라고들 생각하지만, 이런 회사들 대부분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A)이 낮다. 이건 곧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비효율적으로 경영 중이라는 소리다. 이런 회사는 사놓고 기다려봐야 계속 싸다. 싼 주식을 사서 오르길 기다린다는 개념의 전통적인 가치 투자는 차라리 행동주의로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경영 개선을 요구해 주가를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 기업 중 본인이 가치주로 구분하는 기업은 어디인가?
“매수를 추천하는 건 아니지만, 이마트를 예로 들어 들어 설명하고 싶다. 이마트는 PBR이 굉장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회사가 자산을 전환 중이다. 기존 마트의 부동산을 트레이더스 매장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매각한 뒤 온라인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식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회사도 적절한 방향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보단 온·오프라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오투오(O20·Online to Offline)가 앞으로 리테일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보는데, 이마트가 이 방향으로 변신 중이다. 그렇기에 좋은 회사라고 판단한다. 미국 월마트를 체질 개선에 성공한 리테일 기업의 모범 사례라고 보는데, 이마트도 월마트에 못지 않다. 앞으로 ROE가 상당히 개선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가격도 전 세계 유명 리테일 중에 가장 싼 편이다. 단순한 가치주·성장주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따지면 ‘이게 오를까’ 싶을 수도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치 투자의 실적이 지난 100년 역사 중 최악이란 지적도 많다.
“전통적인 개념에서 가치 투자는 PER과 PBR을 따진다. 이중 가치 투자자들은 PBR을 좀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익은 변동성이 크지만 자산 가치는 변동성이 작기 때문이다. PBR이 낮은 기업을 가치주로 분류하는 고정관념도 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자산 규모에 비해 주가가 낮게 형성된 회사는 곧 경영을 못하는 회사다. 전통적인 가치 투자는 곧 안 좋은 회사에 투자한 것과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PBR이 낮은 회사를 가치주로 분류하고 수익을 따지면 신통치 않을 수밖에 없다. 다들 이런 회사 주가가 언제 움직일지를 모르니 막연히 기다리다 강제로 장기 투자가 된다. 그러다 주가가 한 번 튀면 팔아 수익을 내고…. 내 생각은 다르다. 그냥 좋은 회사 주식을 적당한 가격에 사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 가치가 올라간다. 그렇기에 장기 투자를 해야하는 것이다.”
좋은 회사의 주가, 지금 적절한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좋은 회사는 싸게 사기 쉽지 않다. 왜 싸게 방치되겠는가. 그렇기에 비싸지만 않으면 적절한 가격이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포트폴리오의 PER을 한국 시장 평균에 맞춘다. 예컨데 우리나라 시장 평균 PER이 15라면, 가치 투자자들은 평균 PER이 10인 포트폴리오를 짠다. 성장주 투자자들은 PER 아예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우리는 시장 평균 PER이 15면, 우리 포트폴리오도 15에 맞춰 유지하려 한다. 종목별로는 평균보다 높기도, 낮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평균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면 적정하다고 본다.”
최근엔 금융주 같은 전통적인 가치주가 오를 타이밍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금융주가 가치주라는 분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금융주 대다수가 올해 시장 평균보다 성장률이 더뎠고, 그렇기에 가격이 저렴하다고 다들 말한다.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는 KB·신한금융만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 네이버, 카카오, 페이팔 같은 핀테크도 금융 기업이다. 이들도 포함한다면 금융주가 시장 평균보다 한참 처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핀테크 업체에 대한 평가는 연령대 젊을수록 더욱 커지는 만큼 미래 전망도 밝다. 금융주 같이 한 업종 전반을 저평가된 가치주로 분류하고 접근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웬만한 영역에선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치 투자의 시대, 다시 올까?
“'가치 투자의 개념이 바뀐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고루한 개념의 가치 투자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치 투자의 개념이 바뀐다면 가치 투자의 시대는 온다. 아니, 사실 한 번도 가치 투자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사실 가치 투자자들이 버핏을 존경하는 건 수익 때문이 아니다. 버핏조차 국내 기업에 적은 규모의 투자를 하면서도 한국에 직접 왔다. 투자를 할 땐 몇 년치 사업 보고서를 미리 다 읽어보고 직접 찾아가 취재도 한다. 가치 투자자들은 버핏의 이런 신중한 태도를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걸 닮고자 노력한다. 버핏의 투자 태도 자체가 곧 가치 투자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이런 옳은 의미의 가치 투자는 그렇기에 늘 좋았고, 앞으로도 좋을 것이다.”
가치 투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①좋은 업종(Right Theme) ②좋은 경영진(Right People) ③좋은 가격(Right Price) 세 가지를 고려하자. 우리도 이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해 투자 후보 기업을 추려두고 매수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악재나 이상한 뉴스가 나와 흔들리면 바로 들어간다. 가치 투자한다고 구글을 싫어한다? 이런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 가치 투자자가 구글을 샀다면 ‘왜 지금이 적절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나?’를 궁금해하는 게 순서다. 바이오 기업을 샀어도 마찬가지다. 버크셔 헤서웨이도 2016년 애플을 샀다. 애플이 속한 업종의 미래 전망이 밝고, 그 자체로 좋은 회사라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테크’라는 건 업종 구분에 불과하다. 테크주이기 때문에 가치주가 아니다 식으로 구분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투자를 할 땐 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을수록 좋다. 사실 버핏의 애플 매수에서 남는 의문은 가격 뿐이다. ‘버핏이 애플을 샀다니 가치 투자 아니네’ 이런 말을 하기 보단, ‘왜 버핏은 지금 애플이 적정 주가라고 생각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나도 버핏을 만나 물어보고 싶다. 왜 지금 적절한 주가라고 평가했는지, 그 근거나 기준이 뭘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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