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청년 스콧 영은 MIT가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한 수업들을 활용, MIT 컴퓨터공학 학부생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쌓았다. 그는 이 과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정리해 올렸고, 당시 학습 전략을 '울트라러닝'이라고 이름붙였다. /신송아 인턴기자

수학·과학 분야 최고 대학이라 불리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까다로운 고차 방정식은 물론 미·적분, 대수기하학, 벡터 등 어려운 개념을 극복해야만 한다. 캐나다 청년 스콧 영(32)도 8년 전 MIT의 고통스러운 고난도·고강도 학습 과정을 겪었다. 다른 MIT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MIT 캠퍼스는커녕 매사추세츠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고, 모든 수업은 MIT로부터 약 4000㎞ 떨어진 캐나다 밴쿠버 자신의 집 침실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스콧 영은 ‘MIT 챌린지’ 당시 오전 6시에 공부를 시작해, 오후 6시에 마감했다. 어떤 과목은 월요일에 첫 강의를 듣고, 금요일에 기말고사를 보기도 했다. 4년 과정을 1년 만에 해내기 위한 초고강도 학습이었다. 그는 “한국서 대학 입시 공부하는 것에 비할 바는 못된다”며 살짝 웃었다. /스콧 영

그는 집에서 MIT 컴퓨터공학 4년 과정(33개 수업)을 1년 만에 독파했다. MIT가 ‘MIT 오픈코스웨어(OpenCourseWare)’란 사이트에 이 과정을 모두 무료로 공개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은 이를 ‘MIT 챌린지’라고 이름 붙인 뒤,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했다.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학교 교육의 틀을 깨부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MIT 챌린지’ 때의 학습 전략을 정리한 책 ‘울트라러닝’(Ultralearning·직역하면 ‘초학습’이란 뜻)은 지난해 아마존 경제·경영 분야 ‘올해의 책’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꼽은 ‘베스트셀러’로 선정됐다.(한국어판은 지난 2월 출시.) 그가 말하는 울트라러닝은 짧은 기간에 특정 지식을 겨냥해 기술·지식을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고강도 독학’을 뜻한다. 지난 23일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울트라러닝이란 '초고속, 초고강도, 초고효율'을 추구하는 학습 전략이다. 지난해 아마존 경제·경영 분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올 초 국내에도 출판됐다. /비즈니스북스

-왜 이런 도전을 했나?

“점수 맞춰서 들어간 대학은 캐나다의 한 중위권 대학(마니토바)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쯤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공학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로 돌아가자니 막막했다. 그러다가 MIT가 온라인에 수업 과정을 무료로 공개하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솔직히 수천달러를 낸, 내 모교 강의보다 훨씬 좋더라. 만약 구글·MS 같은 데 취업하고 싶었다면 학위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난 그저 컴퓨터공학이란 학문에 관심이 있었고, 배우고 싶은 것만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계획을 세웠나?

“목표는 ‘실제 MIT 학생들과 최대한 같은 수업을 듣자’였다. MIT 컴퓨터공학 교육과정을 훑어보고, 학부생이 졸업까지 들어야 하는 수강 목록을 챙겼다. 온라인으로 안 되는 건 대체품을 찾았다. 예컨대 ‘로봇 실험’ 같은 수업은 집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수업으로 바꿔서 들으며 수강 과목 수를 채웠다. 공부한 분량은 실제 MIT 학생이 배우는 수준과 거의 같았다."

MIT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로봇공학 연구실습 과정. 스콧 영은 "이런 수업은 온라인으로 들을 수가 없어, 다른 과목으로 대체했다"고 밝혔다. /MIT

-총 몇 개 과목을 수강했나.

“33개 수업을 들었다. 저학년용 교양 과목은 온라인에 있던 수업 자료만 읽어도 충분히 그 수업에 걸맞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몇 과목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예컨대 ‘컴퓨터의 구조’ 과목은 강의 영상이나 교과서도 없이, 오직 강의용 슬라이드만 올라와 있었다. 교수님 설명이 없으니,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혼자 상상력을 총동원했다. 인터넷을 한참 찾아가며 공부한 끝에 시험을 겨우 통과했다.”

울트라러닝 9단계

-당시 하루 일과는?

“33개 과목이니까, 대략 열흘마다 한 과목을 끝내면 됐다. 초반엔 오전 6~7시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강의를 보면서 문제를 풀었다. 중간에 아침·점심 식사를 30분씩 하고. 오후 6시쯤 컴퓨터를 덮었다. 월·화요일엔 강의 영상을 전부 보고, 수·목요일엔 연습문제를 풀었다. 금요일 오후엔 마찬가지로 온라인에 공개된 실제 시험을 봤다. 가끔 준비가 덜 됐을 땐 다음 주 월요일로 시험을 미루기도 했다. 온라인 수업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난 평일에만 공부했고, 주말엔 쉬었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 공부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MIT는 강의 영상 및 학습자료, 시험 등을 'MIT 오픈코스웨어'에 공개하고 있다. 스콧 영은 이 자료로 집에서 컴퓨터공학을 독학할 수 있었다. /MIT 오픈코스웨어 캡처

-독학할 때 가장 집중한 부분은?

“연습문제(이 역시 온라인에 다 문제와 답이 올라와 있다)를 직접 풀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학습’이 이뤄진다. 물론 강의 듣고 필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를 풀면서 최대한의 답을 만들고, 그다음 정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많은 학생이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책을 펴고 답안을 찾는다. 그런 식으론 절대 깊이 이해할 수 없다.”

-1년이란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끈기 있게 할 수 있었다. ‘한번 해보지 뭐’ 같은 마음가짐으론 안 됐을 것 같다. 또 처음 MIT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계획안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많은 사람이 ‘웃기고 있네’ ‘보나마나 망하겠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기가 생기더라. 1년간 지속하기 위해 ‘시간 관리’가 가장 중요했다. 오후 6시엔 무조건 공부를 끊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셨다. 쉬는 시간을 두지 않으면 다음 일과를 할 수 없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을 경우, 오히려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일요일 오후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그때도 못 끝내서 월요일에 다시 하려고 하면 의욕도 없다. 범위를 정해 두지 않았다면 번아웃(탈진) 됐을 것이다.”

-온라인만으로 정말 가능하던가.

“왜 안 된다고 생각하나. 실제 대학생 때도 어차피 수업에서 교수님과 직접 소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강의 수강 등의 과정이) MIT 챌린지와 비슷했다. 흔히들 온라인 수업은 강의를 끝까지 수강하는 비율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그건 많은 경우 공부를 하지 않아서라기보다 무료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내는 그 무지막지한 등록금을 생각해보라. 돈 아까워서 출석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만약 대학이 무상 교육을 실시한다면? 똑같이 원할 때만 출석할지도 모른다.”

스콧 영은 MIT챌린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입사 면접 제의를, 한 스타트업으로부터는 아예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일보다는 배움의 즐거움을 더 추구하고 싶었다"며 "초상화 그리기, 세계 각국 언어배우기 등 다양한 도전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스콧 영

-온라인 학습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려면?

“전문가와 상담하든 사전 조사를 꼼꼼히 하든 먼저 학습 계획을 충실히 세워야 한다. 강의를 고를 땐 강의 영상보다는 연습문제가 충실한지 먼저 보는 게 좋다. 문제와 답안만 있다면 강의가 없어도 스스로 실험해보면서 셀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강의를 들었을 때 ‘절반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 수준을 낮춰 기초 과목으로 돌아가라. 기본 지식을 쌓는 건 고되고 지루하지만, 기반이 튼튼해지면 어느 순간 ‘점프’하는 때가 온다."

-MIT 챌린지 이후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입사 면접 제의를, 한 스타트업으로부터는 아예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일보다는 울트라러닝을 더 체험해보고 싶었다. 30일간 초상화를 그린 끝에 제법 능숙하게 그릴 줄 알게 됐다. 스페인·브라질·중국·한국에 각각 3개월씩 머물면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중국어와 한국어를 체화했다. 중국어는 HSK (총 6급 중) 4급으로 제법 괜찮지만, 한국어 실력은 많이 모자란다. 지금은 마케도니아어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배움 챌린지’에 계속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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