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의 대규모 항공기 부품·자재 생산기업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TC) 그룹과 대형 방산업체인 레이시온이 합병을 공식 발표해 세계 방산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UTC는 미 록히드마틴의 F-35 스텔스 전투기 엔진 등을 납품해왔고, 레이시온은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등의 생산업체로 유명했다. 지난 두 회사의 합병이 완료돼 탄생한 레이시온(Raytheon) 테크놀로지스는 미 보잉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항공 방산업체에 올랐다.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의 종업원은 19만5000명, 엔지니어는 6만명, 연간 매출은 약 740억달러(약 83조원)다.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는 산하에 4개 대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항공전자 장비 분야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엔진을 생산하는 ‘프랫 앤드 휘트니’, 첨단 센서 및 정찰 기술 전문인 ‘레이시온 인텔리전스 앤드 스페이스’,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을 만드는 ‘레이시온 미사일 앤드 디펜스’ 등이다.
이 기업들 중 레이시온 인텔리전스 앤드 스페이스를 이끌고 있는 로이 아제베도(Azevedo) 사장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31년 동안 레이시온에 몸담아온 그는 직원 3만5700명, 엔지니어 1만6500명을 이끌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40억달러였다. 그는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환경은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현대전(戰)에서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현대의 첨단 기술인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접목한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는 하드웨어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AI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역량을 투입 중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감시정찰 산업이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를 모으기 위한 기술에 집중했다면, 그 데이터로 무엇을 할지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란 얘기였다. 그는 “AI와 머신러닝은 (군 지휘관의) 의사 결정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라고 했다.
레이시온은 홈페이지에 정찰 분야에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항공모함을 수많은 쾌속정이 공격하는 상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인간이 정보를 분석하고, 쾌속정의 사양을 알아내고, 가장 효율적인 작전을 수립하기는 쉽지 않다. 쾌속정에 대응하기 위해 작전 지휘관은 AI에 음성으로 ‘공격해오는 쾌속정 중 무엇이 가장 위험한지 우선순위 결정’ 같은 명령을 내린다. AI가 가장 위험한 쾌속정을 골라내고 어떤 작전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판단해 알려주면, 지휘관이 이를 토대로 최종 결정을 한다.
레이시온의 ‘AI 작전사령관’ 이름은 CASPER, ‘센서 처리·개발·대응을 위한 인지 보조’란 뜻의 영어 문구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지휘관의 의사결정을 ‘보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레이시온은 아울러 미 정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함께 ‘설명 가능한 AI’를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AI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AI가 왜 특정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 ‘내면’의 결정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이다. 레이시온과 DARPA는 이런 불안을 상쇄할 수 있도록 AI가 스스로의 판단을 설명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생사가 걸린 전장(戰場)에서, AI 전우더라도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제베도 사장은 “우리가 개발한 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AI에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판단 과정 및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인간은 AI의 제안을 더 신뢰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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