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비스포큰 스피릿은 21년산 위스키의 맛을 불과 5일 만에 재현했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실험실에서 뚝딱 만든 위스키가 배럴(참나무통)에서 21년간 숙성한 위스키와 맛은 물론 성분까지 똑같다는 것이다. 이 ‘축지법 위스키’는 지난해 미국 마이크로리큐어 스피릿 어워드 위스키 분야에서 맛이 좋은 위스키로 뽑혀 금메달을 따는 등 6개 대회에서 수상했다. 전문가들조차 블라인드 테이스팅(상표를 가린 시음)에서 기존 위스키와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격은 한 병(350mL~750mL)에 약 35달러로 저렴한 편이다.
이 발칙한 위스키의 시작은 가성비를 따지는 애주가(愛酒家) 과학자의 ‘분노’였다. 재료과학자인 마틴 야누섹은 “좋은 술은 꼭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하나? 특히 ‘천사의 몫(angel’s share·배럴 안에서 술이 증발하는 현상)’으로 술의 20%를 날려야 한다는 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다. 그는 옛 회사 동료인 스투 에런을 찾았다. 이 둘은 15년 전, 연료전지 업체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다. 과학자 마틴과 마케팅 전문가 스투는 3년간 연구·개발 끝에 드디어 ‘속성 숙성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이 신기한 위스키에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몰려들고 있다. 이달 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 데릭 지터는 다른 투자자 한 명과 함께 260만달러(약 29억4700만원)를 이 회사에 투자했다. Mint는 최근 이 ‘축지법 위스키’ 창업자 2명을 화상 인터뷰했다. 이들은 “미국 위스키 시장을 넘어 5000억달러 규모의 전 세계 증류주 시장이 목표”라고 했다.
-진짜 위스키와 똑같나?
“(스투) 우리가 만든 위스키는 화학물질을 탄 합성 위스키가 아니다. 배럴 숙성에 쓰이는 같은 원재료의 추출물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다. 진짜 나무에서 추출하는 것이니까. 전통적인 배럴 숙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빨리 한다고 보면 된다.”
-가장 난관은 무엇이었나.
“(스투) 제조 공정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양조업자들의 불신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기술을 갖고 양조업자들을 찾아갔을 때 다들 의심하고 꺼렸다.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만 트레저 아일랜드에 양조장을 세웠고, 거기서 만든 술로 여러 권위 있는 대회서 수상했다.”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다.
“(스투) 세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먼저 증류주다. 증류주면 아무 술이나 다 가능하다. 방금 만든 증류주 원액뿐 아니라 저연차 숙성 위스키도 좋다. 그리고 아주 작은 널빤지 조각(micro stave)들이 필요하다. 원목의 종류, 그은 정도 등을 위스키 종류에 맞게 준비한다. 이게 배럴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배럴의 약 2만5000분의 1 크기에 불과하다. 그다음이 액티베이터(Activator)다. 큰 스테인리스 통같이 생긴 것인데, 여기에 증류주와 나뭇조각을 넣는다. 이제 어떻게 세팅 하느냐에 달렸다.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다. 온도, 섞는 속도, 기압의 값 등을 정교하게 입력한다. 이제 3~5일간 숙성하면 술이 완성된다. 물론 그동안 액티베이터 안 화학반응을 제어하는 것도 우리만의 기술이다.”
-레시피가 필요할 텐데.
“(스투) 물론이다. 색깔을 삼원색(빨강·초록·파랑)으로 표현하듯, 우리는 술의 3요소를 향·색·맛으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레시피를 만든다. 고객이 “약간의 바닐라 풍미와 캐러멜색의 위스키를 원한다”고 주문한다면, 우리가 가진 샘플을 맛보여주면서 계속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맛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비결은 앞서 말한 증류주·나뭇조각·액티베이터 세팅, 이 세 가지 조합이다. 우리는 170억개의 조합 값이 있다. 이를 통해 이미 증류주 1000여 가지 레시피를 확보했다.”
-어떠한 술도 다 만들 수 있나.
“(마틴) 우리 기술로 웬만한 증류주는 다 만들 수 있다. 혼합 위스키뿐 아니라 싱글 몰트도 가능하다. 럼·브랜디·테킬라도 만들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 기술은 배럴 숙성 식품에는 다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볼까? 와인·식초·간장뿐 아니라 김치까지도 가능하다. 숙성식품이지 않으냐.”
-양조업자가 되려는 것인가.
"(스투) 우린 양조업자가 아니다. 진짜 하려는 것은 공정 혁신이다.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했다. 먼저, 서비스형 숙성(MaaS·Maturation as a Service) 모델이다. 양조업자들이 엄청난 재고를 쌓아두고 있다는 것 아는가? 특히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소규모 양조업자들은 자금난을 호소한다. 위스키가 만들어지기까지 수~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가 가져다가 즉각 팔 수 있도록 즉각 숙성시켜준다. 비스포큰의 기술로 70%의 비용을 절감하고, 5년의 세월을 단축할 수 있다.
다음은 서비스형 주문 제작(CaaS·Customization as a Service) 모델이다. 도·소매상이 타깃이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수퍼마켓 체인 등이 원하는 위스키를 우리가 처음부터 설계해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 수퍼마켓 체인은 요즘 미국서 유행하는 일본식 위스키를 주문했다. 일본식 위스키는 색이 옅고, 꽃향이 나는 특징이 있다. 다른 곳은 유명 브랜드 위스키의 맛을 따라 한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21년산 위스키 맛이 난다고 21년산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까? 기존 위스키 업계는 비스포큰 스피릿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틴) 일단 우리는 그런 식의 연도 표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위스키로 명칭되려면 숙성 기간 등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되는 걸 안다. 그런 규칙은 다 업계에서 만든 거다. 또한 우리는 현대 밀레니얼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특정 브랜드에 매몰되지 않으며 지속가능성에 주목한다. 기후변화로 위스키 숙성 환경을 기존과 같게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배럴 하나를 만드는 데 100년 된 참나무 한 그루가 필요하다. 엄청난 자원 낭비 아닌가? 우리는 나무 사용량을 97%까지 줄일 수 있다.”
-21년산 위스키와 30년산 위스키의 맛은 어떻게 재현하는가.
“(스투) 모든 21년산, 30년산 위스키 맛이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위스키맛은 다 화학과 관련 있다. 21년산과 30년산 차이도 결국 화학 성분의 차이다. 우리는 이걸 레시피로 만든다. 우리는 맛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복잡한지 이런 것들을 측정한다. 이것 역시 모두 화학반응 때문이지 시간과는 무관하다. 단지 예전의 방식이 번거롭고 오래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원래 배럴은 숙성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운송과 저장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굳어진 것이다.”
-한국 출시 계획은 있는가.
“(스투) 하하, 바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처음 우리가 제품을 출시했을 때 한국에서 보여준 큰 관심에 깜짝 놀랐다. 기사도 많이 나왔고 이렇게 인터뷰 요청까지 오지 않았는가. 한국은 분명히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 (마틴) 사실 아내가 한국인이다. 내 가족의 뿌리가 한국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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